내부고발자의 사례연구(Case study) - 3
내부고발자의 사례연구(Case study) - 계속 -
김필수 축협지소장의 군납비리제보
1994년 10월 참여연대는 옹진축협이 연루된 군납비리의혹을 공개하였다. 내용은 옹진축협이 백령도에 상주하는 해병 6여단에 군 부식을 납품하지도 한고, 납품한 것처럼 각종 장부를 허위로 조작하여 9천 5백만 원을 횡령했다는 것이다. 그는 해당 사실을 직속상관에게 보고했고, 대통령에게 탄원도 했지만 전혀 해결되지 않았으며, 축협에서는 인사상의 불이익만 당했다.
그가 참여연대를 통해 공개하기 전에 직속상관에게 문제를 제기해 내부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했을 때 상부로부터 묵인하도록 압력을 받았다. 더욱 문제가 된 것은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제출한 것이었다. 이 때부터 조직에서는 그의 직급을 강등했으며, 다른 부서로 강제 전직돼 결국은 면직처분 됐다. 물론 그는 소송에서 이겨서 복직을 했지만, 그 즉시 ‘더 이상 조직에서 일할 수 없음’을 밝히고 사표를 제출했다. 그가 용기를 내서 공개적으로 내부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했지만 좌절된 것이 외부고발로 이어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된 것이다. 이런 사건에서 대부분의 관련자들은 오랜 관행이나 상관들의 묵시적 동의 혹은 내부직원의 조직적인 부정행위로 인해 처벌을 받지 않는다.
박대기 국방부 구매담당관 군예산 낭비 고발
1998년 2월 국방부 외자조달 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박대기 국방부 구매담당관은 국방부가 제작가보다 최고 몇 백배까지 고가로 장비를 구입해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고 언론에 공개했다. 물론 그도 언론에 공개하기 전에 내부에서 해결하고자 다양한 노력을 했다. 그러나 군납의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내부에서 제안서를 제출했지만 오히려 면박을 당하거나 냉대를 받았다.
결국 그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제도개선을 제안하기에 이르렀고, 이때부터 굴욕적인 모욕과 수난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언론에 공개한 이후에는 자신의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도서실 사서직으로 보직이 변경되기도 했다. 그는 이런 조직내의 대우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1998년 9월에 명예 퇴직했다. 그러나 그의 용감한 결정은 1998년 3월 감사원이 감사를 시작하도록 만들었고, 1999년 초, 국방부 내에 조달정보과를 신설해 장비에 대한 가격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게 만들었다.
주한미군 독극물 한강방류 고발
2000년 7월, 녹색연합이 기자회견을 통해 “용산 미 8군 영안실에서 ‘포름알데히드’라는 독극물을 기지내 하수구를 통해 한강에 방류했다”고 발표했다. 물론 미군에 근무하는 군무원이 제보를 한 것이었다. 원칙적으로 이 독극물은 처리시설이 있는 일본 오키나와 기지로 이송해 처리돼야 하는데, 편의상 그냥 하수구로 흘려보낸 것이다. 사건 초기에 미군이 강력 부인했지만, 증인이 있고 사실이 명백해지자 시인을 하게 됐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들이 시인하면서 밝힌 “포름알데히드의 양이 너무 적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는 주장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국민들은 분노했고, 미군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은 미군철수 요구시위나 반미감정으로까지 이어졌다. 사건의 해결과정에서 미군은 재발방지를 약속했지만 해당 사실을 제보한 군무원은 고용 재계약이 되지 않았다. 2006년 한국영화 역사상 최대의 흥행을 몰고 온 영화 ‘괴물’의 소재도 여기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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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수 축협지소장의 군납비리제보
1994년 10월 참여연대는 옹진축협이 연루된 군납비리의혹을 공개하였다. 내용은 옹진축협이 백령도에 상주하는 해병 6여단에 군 부식을 납품하지도 한고, 납품한 것처럼 각종 장부를 허위로 조작하여 9천 5백만 원을 횡령했다는 것이다. 그는 해당 사실을 직속상관에게 보고했고, 대통령에게 탄원도 했지만 전혀 해결되지 않았으며, 축협에서는 인사상의 불이익만 당했다.
그가 참여연대를 통해 공개하기 전에 직속상관에게 문제를 제기해 내부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했을 때 상부로부터 묵인하도록 압력을 받았다. 더욱 문제가 된 것은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제출한 것이었다. 이 때부터 조직에서는 그의 직급을 강등했으며, 다른 부서로 강제 전직돼 결국은 면직처분 됐다. 물론 그는 소송에서 이겨서 복직을 했지만, 그 즉시 ‘더 이상 조직에서 일할 수 없음’을 밝히고 사표를 제출했다. 그가 용기를 내서 공개적으로 내부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했지만 좌절된 것이 외부고발로 이어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된 것이다. 이런 사건에서 대부분의 관련자들은 오랜 관행이나 상관들의 묵시적 동의 혹은 내부직원의 조직적인 부정행위로 인해 처벌을 받지 않는다.
박대기 국방부 구매담당관 군예산 낭비 고발
1998년 2월 국방부 외자조달 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박대기 국방부 구매담당관은 국방부가 제작가보다 최고 몇 백배까지 고가로 장비를 구입해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고 언론에 공개했다. 물론 그도 언론에 공개하기 전에 내부에서 해결하고자 다양한 노력을 했다. 그러나 군납의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내부에서 제안서를 제출했지만 오히려 면박을 당하거나 냉대를 받았다.
결국 그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제도개선을 제안하기에 이르렀고, 이때부터 굴욕적인 모욕과 수난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언론에 공개한 이후에는 자신의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도서실 사서직으로 보직이 변경되기도 했다. 그는 이런 조직내의 대우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1998년 9월에 명예 퇴직했다. 그러나 그의 용감한 결정은 1998년 3월 감사원이 감사를 시작하도록 만들었고, 1999년 초, 국방부 내에 조달정보과를 신설해 장비에 대한 가격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게 만들었다.
주한미군 독극물 한강방류 고발
2000년 7월, 녹색연합이 기자회견을 통해 “용산 미 8군 영안실에서 ‘포름알데히드’라는 독극물을 기지내 하수구를 통해 한강에 방류했다”고 발표했다. 물론 미군에 근무하는 군무원이 제보를 한 것이었다. 원칙적으로 이 독극물은 처리시설이 있는 일본 오키나와 기지로 이송해 처리돼야 하는데, 편의상 그냥 하수구로 흘려보낸 것이다. 사건 초기에 미군이 강력 부인했지만, 증인이 있고 사실이 명백해지자 시인을 하게 됐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들이 시인하면서 밝힌 “포름알데히드의 양이 너무 적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는 주장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국민들은 분노했고, 미군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은 미군철수 요구시위나 반미감정으로까지 이어졌다. 사건의 해결과정에서 미군은 재발방지를 약속했지만 해당 사실을 제보한 군무원은 고용 재계약이 되지 않았다. 2006년 한국영화 역사상 최대의 흥행을 몰고 온 영화 ‘괴물’의 소재도 여기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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