乳哺養育恩(유포양육은)을 생각하며
국가정보전략연구소
2011-04-18 오후 3:24:00
최근 모 방송국에서 보도한 해외 부모유기 사건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사건에 소개된 개인들의 특별한 사정이야 있겠지만,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칭송 받아왔던 대한민국의 국민이 일으킨 사건이라고 믿고 싶지 않다. 특히나 가정의 달인 5월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시점에서 이런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씁쓰레하다. 물론 개인적으로 효를 잘 실천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지만, 마음이 무거운 시점에 선배님이 좋은 글을 보내 주셔서 같이 나누었으면 하는 생각에서 정리한 것이다.

아버님의 높은 은혜 하늘에 비기오며
어머님의 넓은 공덕 땅에다 비할 손가,
아버지 품어주고 어머니 젖 주시니
그 하늘 그 땅에서 이 내 몸 자라났네.

아기 비록 눈 없어도 미워할 줄 모르시고
손과 발이 불구라도 마다하지 않으시네.
배 가르고 피를 나눠 친히 낳은 자식이라
종일토록 아끼시고 사랑하심 한이 없네.

자신의 몸에서 난 간난아기를 키우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부모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옛 책을 보면 부모에 대한 효(孝)의 실천방법을 자세히 나오는 게 있다. 간단하게 보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문안인사를 드리고, 저녁에 자기 전에 잠자리가 불편한지 봐 드리는 것이 매일의 일과가 되어야 한다. 평소에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마음이 불편하게 하지 않고, 부모가 아프면 단지공양(斷指供養)을 하여 쾌차하도록 해야 한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입신양명(立身揚名)하여 부모의 이름을 드높이는 것이 효도의 마침이라고 하였다. 왕조시대에는 아마도 평민보다는 경제력으로 여유가 있고 과거 시험을 통해 출세를 할 수 있는 양반, 즉 선비들에 해당하는 효도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물론 평민이나 상인들도 위에 제시된 방법이 아니라도 자신들이 행할 수 있는 방법으로 효를 실천한 사례가 많다. 양반이 아니더라도 극진한 정성으로 효를 실천하여 역사 속에 오래 잊혀지지 않는 평민들도 많다. 우리 고전에서 몇 가지 극단적인 사례를 보자. 먼저 심청전의 심청의 경우이다. 심청은 눈이 먼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 공양미 3백석에 상인들에게 팔려가서 인당수에 몸을 던지게 된다. 나이든 아버지의 개안(開眼)을 위해 죽음을 결심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많은 설화에 단지공양이 많이 나온다. 병약한 부모를 위해 손가락을 깨물어서 목구멍으로 피를 흘려 넣어 소생하게 한다거나 불치의 병에 걸린 부모님을 위해 자식을 죽여서 먹인다는 것이다. 물론 심청이도 인당수에 몸을 던졌지만 지극한 효성에 감동한 용왕님이 구해주어 왕비가 되어 눈뜬 심봉사와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과 자식을 희생한 공양에서도 자식을 죽여서 공양을 하고 났더니 그것이 아들로 분한 천년 묵은 산삼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요즘 아이들에게 이야기 하면 과연 이해할까? 현대의 풍요로움과 편안함에 익숙해져 있는 세대들에게 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이들의 시각에서 보고 이야기를 해석해야 할 것이다. 기본적인 효의 개념은 변하지 않겠지만, 효를 행하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달라져야 하 것이다. 또한 부모를 모시는 방법도 부모의 경제력이나 상황, 자식의 경제력이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된다. 자신에게 무조건적인 희생을 해준 부모님을 외국에 데려가 버리거나, 돈을 충분하게 주지 않는다고 폭력을 휘두르거나, 자신이 어렵다고 무조건 연락을 끊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 시대에 구시대적인 효도의 방법을 강요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분명하게 세상은 변하였고,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므로 구세대던 신세대던 우리 모두가 전통을 계승할 수 있도록 지혜를 함께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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