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뉴스기사안내]민홍규 MB정권 정치적 마녀사냥 희생됐다
국가정보전략연구소
2014-09-25 오후 12:01:00
민홍규 "MB정권 정치적 마녀사냥 희생됐다"



백서원 기자 | ron200@naver.com​

승인 2014.09.22 11:17:53

2010년 8월. 국새사기사건이 발생한다. 민홍규(60)는경남 산청 출신으로 노무현 참여정부 당시 국새장인으로 인정받아 대한민국 국새를 전통방식으로 재작한다. 민홍규가 전통방식으로 국새를 만드는 비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 국새를 만들고 남은 금을 빼돌렸고, 그 금으로 금 도장을 만들어 정·관계, 언론계에 로비용으로 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민홍규는 전통국새 제작 비법을 보유한 동양 3국(韓·中·日)에서 유일한 ‘옥새전각장’에서 하루아침에 파렴치한 희대의 사기꾼으로 전락한다. 결국 민홍규는 사기죄로 구속된다. 3년형을 선고받았다. 민홍규는 2013년 9월 만기 출소했다. 민홍규를 변론했던 박찬종 변호사는 “민홍규는 정치적 희생양이다”고 했다. 당시 MB정권에선 천안함, 4대강사업 등 여러 가지 골치아픈 문제가 많았다. 이를 덮기 위한 수단으로 민홍규를 이용했다는 지적이다. 2014년 9월 16일 본지 사무실에서 민홍규 작가를 만나 그의 억울한 사정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국새사기사건의 진실은 무엇인가.

▲MB정권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여론의 마녀사냥에 희생됐다. 수사기관과 언론은 내가 국새를 만들고 남은 금을 빼돌렸고, 그 금으로 금 도장을 만들어 정관계와 언론계에 로비용으로 돌렸다고 했다. 내게 씌워졌던 혐의를 모두 벗었다. 수사 결과, 기소조차 안 됐거나 재판 과정에서 모두 무혐의 처리됐다.
금의 국제 시세는 매일 다르다. 당초 정부에 예산을 신청할 때보다 받을 당시 금값이 많이 올랐다. 추가 예산 신청을 했지만 거부당했다. 결국 정부 예산 받은 대로 금을 구매하고, 부족분에 대해선 내가 보유하고 있는 금을 보탰다. 또 남은 금은 거푸집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나중에 국고에 귀속됐다. 법원도 금 횡령과 금 도장 로비는 모두 무혐의 처리됐다.

-박찬종 변호사는 정치적 희생됐다는 주장이다.


▲박변호사는 정치적 이용되고 있다. 명확한 증거들이 있음에도 이를 배척한 사법부의 판단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사기꾼들의 어설프고 조잡한 모함에 놀아난 수사기관은 부끄럽게 여기고 재수사해야 한다고 했다. 게다가 사건을 맡았던 한 검사도 판결 후에 미안함을 전했다. 여론의 마녀사냥과 정치적 입김이 작용됐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한 것이다. 당시 4대강 사업과 천안함 격침 등으로 정부의 여론이 나빴다. 결국 여론을 반전시킬 카드로 참여정부 당시 국새 장인이 된 나를 희생양 삼은 것이다. 많은 여야 정치인들에게 금도장을 새겨 줬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명숙, 정동영 등 야권 정치인만 거론했다. 실제 재판이 한창 진행 중이던 2011년 4월 27일 국회의원 재보선 때는 분당에 출마한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연결 지으려 했다. 검사는 제게 “손학규한테 금도장을 바쳤다고 하면 수사자료를 모두 소각하고 없던 일로 해주겠다”고 회유했다.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내가 만든 4대 국새가 단지 노무현 정부 때의 일일 뿐 나는 정치인이 아니다. 저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길 바란다. 그저 한 사람의 예술가로 남고 싶을 뿐이다



-사건의 전말은 무엇인가.


▲ 실제 사건의 단초는 다른데서 시작됐다. 황금골프터터 사업에서 비롯됐다. 국새제작단에서 비서역할을 했던 박씨가 총 기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씨의 친형이 YTN 사회부 차장이었고, 국새사건을 처음 보도한 SBS 이모 기자는 박모의 중앙대 대학원 동기이다. 연합뉴스 한모 기자는 이번 사건의 핵심 이해 당사자인 골프퍼트사업가인 박모의 처조카로 알려져 있다. 검찰수사보다 언론이 한발 앞서 간 것을 보면 조작된 사건임을 알 수 있다.



-<국새백서>의 조작됐다.


▲나는 작가다. 정치는 모른다. 4대 국새 공모전에서 조각과 글씨 부문에서 각각 1등 당선됐다. 단장을 맡아 국새를 제작했다. <국새백서>의 책임을 맡은 000의 천00가 조작했다. 실제 국세담당을 했던 천00는 박물관장으로 승진했다. 국새제작단에서 주물보조로 담당한 이모 씨의 주장만 받아들여 백서를 작성한 게 잘못이다. 국새제작에 보조로 참여했던 이 씨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현대식으로 만든 국새를 민홍규가 바꿔치기해서 국가에 납품하였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을 확인도 않고 언론은 보도했다.



-이 씨의 거짓제보와 진술이 사태를 확산시키는 계기였다는 지적이다.


▲이 씨의 거짓 증언의 압권은 2007년 12월 1일과 2일 국새 제작 장소인 경남 산청에 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날 이 씨는 국새를 만들 때 옆에서 주물을 나를 도왔다. 그런데도 허위증언으로 일관했다. 이씨가 있는 증거사진을 제시하자 12월 2일 밤늦게 도착해 3일 개물식 행사에만 참석했고, 주물 하는 과정을 본적이 없다고 했다. 후일 12월 1일자에도 이 씨가 현장에 있었다는 사진을 제출하자 급기야 사진의 날짜를 조작했다. 국립과학수사원에 사진조작여부를 의뢰한 결과 ‘조작 흔적이 없다’고 나왔다.
하지만 검찰은 국과수의 감정결과가 “재판에 도움이 안 된다”며 무시한 채 나를 구속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사법부인가.



-민홍규씨를 돕던 사람들의 이권다툼이 발단이라는 것이다.


▲국새를 만든 후 행정담당 박 모와 골프퍼트 박모와 함께 황금퍼트 사업을 하기로 했다. 계약은 종신노예계이나 다름없었다. 거부했다. 그들은 ‘국새장인이 만든 퍼트’라는 이력이 필요해 저를 동업자로 끌어들이려던 게 실패하자 저 대신 이 씨를 내세우기로 했다.
이 씨에게 민홍규에 버금가는 스펙을 만들어줘야 했기에 먼저 <국새백서>의 이씨의 자격을 조작했다. 여기에 <국새백서> 제작을 담당했던 국립민속박물관 관계자와 행정자치부 일부 공무원 등도 연루되어 있다.
이 씨는 황금퍼트를 홍보하기 위해 조선조 옥새 복원 등 제 모든 경력을 자기 것인 냥 그대로 다 가져갔다. 이의를 제기하자 이를 껄끄럽게 여긴 관련자들이 ‘민홍규 죽이기’에 나섰다. 이들은 재판 과정에서 저를 고발하기 위해 1년을 준비했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국새를 만든 장인이 따로 있다고 해 그 스펙을 이용, 황금퍼트사업을 홍보하고 판매하려 한 속셈이 드러난 것이다.



-제보자들은 ‘민홍규가 가진 전통기술 비법’을 집요하게 알아내려 했다.


▲ 제 국새 제작 전통기법은 거푸집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 석고로 하는 현대기법과 달리 전통기법의 재료는 진흙이다. 석고거푸집은 섭씨 1,000도 이상 가열(소성)하면 깨지지만, 진흙거푸집은 2,000도 이상 가열해도 깨지지 않는다. 전통 항아리처럼 숨을 쉬는 진흙의 고유한 성질 때문이다. 이씨가 비법인 양 주장하는 주물은 액체를 거푸집에 붓는 단순한 행위에 불과하다. 비법과는 거리가 멀다. 목숨보다 소중한 비법을 알려줄 수 없었다. 차라리 교도소를 가더라도 비법은 공개할 수 없었다. 백악관이 코카콜라를 주문하면 코카콜라만 납품하면 되지, 코카콜라를 제작하는 비법까지 알려줄 의무가 있나. 국가가 한 장인에게 국새 하나를 주문하고 그 비법까지 공개하라고 하면 그것은 공권력의 횡포다.

-민홍규 씨가 비법공개를 거부하자 ‘전통기술 부재’로 몰아갔다.


▲저는 수사 초기부터 줄곧 ‘공개 시연’을 주장했다. 시연만 하면 금세 진실이 판가름 날 간단한 일을 검찰과 재판부는 기를 쓰며 전통기술이 없다는 것으로 몰고 갔다. 제가 전통기술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많은 사람들이 곤란해지는 상황에 빠진 것이다.
저는 수감 중 ‘내가 갖고 있는 기술이 어디 가겠느냐’는 생각에 출소 후 공개 시연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담담하게 3년 형기를 다 채우고 2013년 9월 출소했다.
-조선시대 옥새 73과 중 40여 과를 복원해 경기도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기증했다.



▲조선시대 옥새전각장의 맥을 잇는 대한민국 1대 국새 제작자 석불(石佛) 정기호 선생으로부터 국새 전통주물기법을 전수받았다. 수십 년 동안 부단한 실험을 통해 전통주물기술을 복원하여 완성했다. 석불의 아들 목불(木佛) 정민조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민홍규를 잘 모른다. 아버지의 제자가 아니다”고 한 말은 거짓이다. 석불 정기호가 만든 1대 국새에 관한 기록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의 옥새전각장 계보도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아버지 석불 유고집 <고옥새간회정도(古玉璽看繪鄭圖)>을 자신이 아닌 제자 민홍규가 가지고 있는 것이 억울하고 화가 났다고 한다. 이 또한 누군가가 목불과 저를 이간질했다는 것이 목불을 만나본 결과다.

-향후 계획은.


▲제대로 된 역사와 이론을 정리하고 싶다. 어린이 미술만 해도 수입된 게 많은데 우리 미술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위주의 LAP아트로 분류해서 남길 것이다. LAP아트는 90년대부터 해온 것으로 선과 점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또 역시 90년대서부터 해온 ‘녹서’라는 자전이 있다. ‘푸를 녹’자를 써서 녹음이 모든 희노애락을 덮는다는 뜻이다.

감옥에 있던 3년간 자전을 썼다. 일반 옥편이 아닌 약 7만자 정도의 서체화다. 90년대에 이미 시작한 바 있는 ‘융합서체’라는 작업이다. 또 복원 못한 나머지 옥새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복원해 박물관에 기증할 생각도 있다.



-국새에 대한 생각은.


▲국새는 과거 왕조시대 땐 절대 권력의 상징이다. 한 나라의 도장 이상의 의미가 있다. 나라의 흥망성쇠를 따지는 귀한 물건임에 틀림없다. 국새사건의 연루자들은 이러한 국새를 가지고 너무나 위험한 장난을 쳤다. 3년간 감옥에 있다 출소를 하고 나니 걸음도 불편하고 오른쪽 눈도 더 심해져 실명할 수도 있겠다는 말을 들었다. 보고 쓰기가 좀 불편하지만 어쩌겠나. 작업은 계속될 뿐이다.

[내용출처 : 공정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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