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화재, 국새 폐기…잇단 대형 참사와 무관할까 - 3 - 세계일보일보 관련 기사
국가정보전략연구소
2014-08-06 오후 4:20:00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범부로서 이 터를 만나고, 터가 가진 기운을 일깨워 하나하나 모양새를 찾아가던 여정이다. 완벽한 모습을 갖추기 전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으려 했던 비밀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이 터가 시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반도를 거대한 몸으로 가정하면, 불기운이 가장 큰 혈처는 백두대간 단전자리이다. 전국 산천을 떠돌다 찾은 적임지를 찾았다. 오행으로 토생금(土生金)을 부르는 터로 먼저 이곳의 땅 기운이 금(金) 기운의 국새를 만들도록 했다. 이곳에 국새전각전을 지어 대한민국 4대 국새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땅의 고단함을 처방하는 대길지(大吉地)로써 한반도에서 기(氣)가 가장 많이 뿜어져 나오는 혈처(穴處) 세 곳을 잡았다.

이곳에서 국새 제작뿐 아니라 세 개의 바위가 침을 놓듯이 혈 자리에 바로 자리 잡게 될 때는 국운도 만개하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터라고 생각했다.

세 개의 바위는 각각 성격이 있다. 석경은 하늘의 뜻을 담아내는 강기석(降氣石), 귀감석은 땅의 지력을 돋우는 응기석(應氣石), 복석정은 사람을 위해 풀어내는 정기석(精氣石)이다.

이 터의 세 혈처와 국새전각전, 등황전 등 비보(裨補) 건물은 서로 상응하도록 지어졌다. 국새 제작 외에 분정항례(分庭伉禮) 등 이 터 안에서 벌어질 여러 일들을 예상하여 정하였다. 전각전은 기 운행의 최종 건물이라 매우 중요하다.

산을 향해 올라가듯 자리 잡은 귀감석. 발을 만들어 생명을 주고, 꼬리는 잘라 숨겨두었다.



세 번재 혈처 옆에 임시로 둔 솥바위 복석정. 민홍규는 함부로 옮기지 말라 했으나 군청에서 임의로 옮겨 온갖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마침내 국새를 제작할 터가 잡히고 국새전각전도 건립할 수 있게 되었다. 국운 융성과 국민 화합을 기원하는 4대 국새를 제작할 세 혈처도 찾아냈으니 틀은 잡힌 것이다. 이 터가 정말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영원한 쉼터가 될 수 있었으면 했다.

이 자리는 지리산 천왕봉을 축으로 화엄사 각황전과 서로 힘을 대등하게 조율하는 ‘큰오름(등황)’의 운장이 있다. 서로 좋게 한다는 힘이다. 그래서 등자(말등자)요, 평성을 잡아주는 비보 건물의 이름으로 등황전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 터는 세 개의 바위를 제 혈처에 놓는 데 있다. 그러려면 기운을 잡는 비보 건물도 제자리에 잡혀야 완성되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민홍규가 모함을 받게 되자 산청군은 2013산청세계한의약엑스포 개최를 이유로 복석정을 엉뚱한 곳에 안치했다. 등황전은 오색 칠을 해 마치 사찰 같이 만들어 놨다. 이런 까닭에 이 터는 아직 미완성이다.

터 표지

민홍규가 국새와 세 개의 바위를 굳이 이 터에서 완성하려 했던 이유는 4대 국새에 담은 의미를 실현시켜 줄 수 있는 힘과 이 땅에 다가올 어려움을 막으려는 데 있다.

황종국 변호사는 “석경과 귀감석, 그리고 마당에 팽개치듯 놓인 복석정, 짓다만 등황전과 지붕의 삼족오 치미(雉尾), 앞으로 보이는 열린 공간을 둘러싼 산과 산. 이미 전각전과 그 뒤 굴뚝이 지닌 예술적 매력에 홀려있던 나는 이런 곳에 터를 잡고, 이것들을 배치하면서, 이런 건축물을 짓고자 한 놀라운 안목을 지닌 이가 누구인지 확인하고픈 생각이 간절해졌다”며 민홍규가 설계하고 총감독한 등자울 터와의 첫 인연을 소개했다.

조정진 <누가 국새를 삼켰는가>(글로세움) 저자는 “책에는 동양철학과 풍수에 능한 그의 천부적인 통찰력과 직감력, 나라와 국민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면서 “그가 마무리하지 못한 등황전과 복석정에 대한 문제는 지금이라도 책임 있는 누군가 나서 완성할 수 있도록 돕길 바란다. 나라와 국민의 잇단 큰 불행이 멎길 바라는 그의 충정이 책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길 기대한다”고 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본문 미리보기

“숭례문에 불이 나면 아래에 있던 불의 성질이 화재를 따라 물 위로 솟구쳐 올라타며 나쁜 염준(錟)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변한 상태를 주역 64번째 화수미제(火水未濟) 괘라 한다. 큰물이 위의 불꽃(젊음)을 잡아먹는 괘이다. 그러나 나쁜 염준을 당해도 희망이 있다. 그 속에 좋은 염준으로 다시 돌릴 수 있는 이치를 스스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7쪽)

“세불은 우리 민족의 역사를 응축하여 이 땅에서 지천태시대를 실현할 구체적인 방책을 담는 그릇으로 4대 국새를 만들고 이 터를 조성하는 대역사를 시작한 것이다. 그가 잡목 우거진 평범한 산 중턱에 터를 잡고 세 개의 바윗돌을 찾아 안치하는 과정은 실로 성(誠), 그 자체이다. 그야말로 호랑이가 먹이를 노리듯 심신을 정일 집중하여 최선을 다하였다. 또한 겸손과 비움으로 천지와 사물의 기운에 감응하는 자세를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하늘과 땅이 감응하여 터를 찾아내고 바위를 구하였다. 마침내 하늘 기운을 받아 내리는 석경과 땅 기운을 분출하는 관문인 귀감석을 제자리에 설치하였다.”(15쪽)

“지구 땅덩이는 그냥 무지한 무기물 덩어리가 아니다. 그 속에 수만 가지 생명을 낳아 기르는 큰 생명, 만 생명의 어머니이다. 그 생명의 기운 질서를 잘 파악해서 따르면 복이 내리고, 이를 거역하면 재앙이 내린다. 땅의 기운이 크면 클수록 복도 크고 재앙도 크다. 그것을 통찰했던 우리 조상은 그 이치를 풍수라는 이름으로 압축해서 후손에게 전했다. 수만 년을 숨어 있던 천장지비의 터를 찾아내어 그 기운으로 나라를 살리고 세상을 평화롭게 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무지렁이들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땅의 기운을 훼손하여 버렸다.

중단된 작업은 산청군이 마무리하였다. 그러나 완전 엉터리로 만들어 버렸다. 가장 중요한 의미가 담긴 세 번째 바위 복석정은 마당 한쪽 구석으로 옮겨 지붕을 씌우고 ‘기 받는 돌’이라 간판을 세워놓았다. 바위가 본래 놓일 자리는 기가 맴도는 혈처이다. 민홍규가 얼마나 세심하게 그 자리를 잡았는데, 자문도 구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옮겨버린단 말인가. 그리고 그 바위를 기 받는 돌 정도로 우습게 만들어버린단 말인가! 등황전은 산청군이 ‘동의전(東醫殿)’이란 현판을 붙였다. 2013세계전통의약엑스포의 의미에 맞춘 것이다. 참으로 소인배의 짓이다.”(16~17쪽)

“세불 자신과 가족은 이미 큰 고통을 당했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세불은 2013년 7월경 여주교도소에서 출소하기 전에 교도소로 면회 온 산청군 관계자들에게 분명히 경고하였다. 비뚤어진 것을 바로잡아 놓지 않으면 재앙이 그치지 않을 것이고, 그 재앙의 다음 차례는 산청군의 최고 수뇌부 두 사람에게 미칠 것이라고 말이다. 불행히도 산청군은 그 말을 듣지 않았고, 재앙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런데 재앙은 산청군이나 이 터와 관련된 사람들에게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미친다. 그 터가 그만큼 크고 의미롭기 때문이다.”(18쪽)

“수십 년 기 공부에 정진하면서 터득한 것이 있다. 자연은 인간에게 진리가 빛나는 터를 쉽게 내어주는 듯하면서도 그 격에 따라 착각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수련이 필요한 것이다. 이 땅에서 최고 기운이 맺힌 백두대간의 단전자리에 한걸음 다가선 듯하다. 그 터의 솟는 혈처에서 국새 제작을 하리라 다짐했다.”(32~33쪽)

“마침내 백두대간의 단전자리가 왕산 아래로 응결되며 총진의 기맥이 진리로 맴돌고 있음을 알았다. 풍수들은 “이 땅에 더 이상의 명당은 없다” 했다. 예부터 “천하의 대명당은 보통의 풍수나 사람들의 체취로는 볼 수 없다” 했다. 맹자가 말한 물교물(物交物)의 의미가 떠오른다. 사람과 사람은 마주하면 자꾸 의심하니,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만 믿는다는 뜻이다.”(38쪽)

“‘산은 사람을 알고, 혈처는 인물을 알아본다’고 했다. 이 모두가 이 땅에 있으니 당연히 땅이 먼저 알아챈다. 혈처나 이것을 타고 내려오는 맥을 건드려 화를 입는 경우가 이를 증명한다. 묏자리의 혈처만 잘 다스려도 복을 받고 인물이 나는 경우는 이미 많이 들어왔다.”(66쪽)

“관계자들에게 ‘솥바위를 함부로 옮기거나 건드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본인에게도 좋지 않지만 혈처의 기운이 틀어져 요동할 수 있고, 나라가 더 불편해질 것이다”고 당부하였다. 예부터 솥바위를 함부로 건드린다거나 잘못 놓게 되면 “지덕(지력·地力)을 손실하고 왕업이 손상된다”고 하였다. 전체 터 안의 건물 비보까지 조성되면 그때 세 번째 혈처에 좌정시킬 것이다. 그때까지 국새전각전인 터는 미완성이다.”(120쪽)

“전각전은 국새를 만드는 대왕가마를 보호하는 집이다. 국새 제작에 관계된 일을 하는 작업 공간이다. 최고의 건물을 짓고 싶었다. 후대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건물과 문화를 남겨주고 싶었다. 전각전은 지금도 경남 제일의 아름다운 한옥이며 역작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정말 짧은 기간 동안 많이 고민하였고 도편수를 일깨우며 혼신을 다하여 국새 제작 기간에 완성한 건물이다.”(131~132쪽)

“전각전 공사를 진행하는 동안 많은 기이한 일들이 생겼다. 처음 터파기에서부터 건물에 대한 예지력을 꿈으로 자주 보여주었기 때문에 슬기롭게 대처하여 무탈하게 공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137쪽)

“전통방법으로 제작된 4대 국새는 <영새부>의 비전을 적용하며 완성하였다. 국새의 시작은 ‘어떤 철학을 기저로 제작할 것인가’에 있다. 4대 국새는 국운융성과 국민화합이 화두였다. 국운융성을 위해, 순수 정기가 가득한 최고의 기(氣)터를 새로 잡았다. 여기서 수개월 동안 전각전을 짓고 그 안의 대왕가마에서 4대 국새를 만들었다. 두 번째 화두인 국민화합을 위해서는, 전국 각지의 흙을 모아 거푸집으로 사용하였다.”(156쪽)

“전통적으로 ‘국새에 발이 없으면 껍데기 왕(통치자)이 된다’고 한다. 뉴조각에 발이 없거나 조각되어 드러나지 않는 것은 백성(국민)의 지지가 없다는 것을 뜻하여 금기시한다. 인장전각 위에 올려질 뉴조각은 통치자를 상징한다. 따라서 한 몸에 하나의 머리를 올려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이유에서든 두 개의 머리가 만들어지면 두 사람의 임금이 있다 하여 국가의 분열을 뜻했다.”(157쪽)

“돌이켜보면 이 터는 현재 미완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처음 국운융성과 국민화합의 4대 국새를 위해 한반도의 단전자리인 이곳을 찾아내고 나서 무척 기뻤다. 국새를 만든 뒤 숭례문이 불타면서 터를 더 새롭게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을 하늘의 뜻에 맡긴다.”(286쪽)

“쉬고 있는 내게 낮에 차나무를 심던 일꾼이 넌지시 와서 전한다. ‘필봉산 밑에서 밤낮없이 큰 소나무를 파내 가는 것 같습니다.’ 산을 누가 훼손하는지 궁금했다. 필봉산 용맥이 흘러오는 자리에서부터 국새전각전 바로 옆까지 붙여서 작지만 휴양지 사업을 할 것이란다. 시간이 지나자 그곳에 굴착기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중에야 군청의 해명을 들었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진고속도로 무주 근처에서 대형 차 사고를 당했다. 하늘이 도와 목숨은 건졌지만 척추가 내려앉는 사고를 당했다. 2009년 7월 9일이었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환란을 예고하는 경고에 불과했다.”(287~288쪽)

“이미 처음부터 4대 국새사건이 기획되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예부터 국새는 신품(神品)이라 건드리는 것은 국가를 뒤집는 것과 같다고 했다. 다가올 시련이 두려웠지만 이미 검은 파도가 선을 넘고 있었다. 환란이 시작된 것이다.”(290쪽)

“대자연의 분노가 시작되었다. 2010년 3월 25일 북쪽에서는 함박눈이 내렸고 이 터는 함초롬히 비에 젖고 있었다. 왕산과 필봉산의 혈맥은 더욱 파헤쳐져 산바람이 일고 있다. 국새 기운이 정지되고 비보 건축도 중단됐다. 이 땅의 환란을 풀어내기 위한 이 터의 일이 곳곳에서 막히고 있다. 이 터에서 만든 4대 국새가 짓밟히고 있었다. 다음날이었다. 2010년 3월 26일, 터가 진동하였다. 아침부터 바람이 세차게 불어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봄바람이 부는 날,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적인 일이 이 땅에 벌어졌다. 천안함 참사가 났다. 불꽃 같은 젊은 병사 40명이 사망했고 6명이 실종되었다. 결국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291쪽)

“하늘이 요동쳤다. 뚫어진 하늘에서 태풍을 쏟아내는 세찬 비바람이었다. 2010년 9월 초의 날씨에 없었던 이변이 계속되었다. 터에 모셔 놓은 세 번째 솥바위 복석정은 끝내 완성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땅의 더 큰 환란은 어디까지 계속될 것인가.”(293쪽)

“2014년 4월 16일이다. 봄바람이 왠지 차갑다. 하늘이 뒤집혔다. 허망한 바다를 향해 울부짖는 사람들, 찢어지는 가슴을 여미는 통곡이 뉴스로 터졌다. 476명을 태운 세월호 여객선이 침몰했다. 3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부분이 불꽃 같은 청소년들이다. 천안함과 똑같은 선박 사고였다. 계절도 비슷하다. 두 사건 모두 화수미제 상이라 놀랐다. 물(바다) 위에 떠 있는 불꽃(청소년)을 삼켜버린 괘 그대로다. 공교롭게도 이 두 사고는 숭례문의 염준 현상이 짙다. 복석정의 엇박자 힘이 강하게 느껴진다.”(302쪽)

[출처: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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