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륜이 무엇인가 생각하면서
국가정보전략연구소
2011-04-18 오후 3:22:00
내일이 경칩이라고 한다. 물론 도회지에 살면서 24절기를 챙기면서 살지도 않고, 챙길 필요도 없지만 간밤의 추위를 몰아내어 준 봄 기운에 감사하면서 출근하였다. 항상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하지만, 부끄럽게도 세상에 대해 이런 저런 불평을 하기도 한다. 사람관계만큼 복잡한 것이 있을까 하고 생각도 해보지만,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니 인간관계를 어렵다고 피할 수도 없다. 특히 천륜으로 형성된 가족관계는 많은 갈등의 시작이고, 세상 모든 행복의 귀결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침에 출근하여 메일을 열어보니 선배님이 좋은 글귀를 보내 주셔서 잠시 상념에 잠기게 되었다.

연암 박지원선생이 자신이 정신적으로 의지하던 큰형이 돌아가신 후 어느 여름날 시냇가에 앉아 시를 한 수 지었다고 합니다. 다음은 그의 시입니다.

우리 형님 얼굴은 누구 닮았나(我兄顔髮曾誰似)

아버지 생각나면 형님을 봤지(每憶先君看我兄)

이제 형님 생각나면 누구를 보나(今日思兄何處見)

시냇물에 내 얼굴을 비쳐 보네(自將巾袂映溪行)

연암의 시에서 부모를 보내고, 형제를 보낸 후 느꼈을 감정이 와 닿습니다. 그는 부모님을 잃은 후 15세 연상의 큰형을 매우 의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큰형을 잃은 그 해 봄에 아내를 잃었고, 얼마 후 며느리를 잃었고, 여름에 형을 잃었습니다. 그의 나이 50세였습니다. 40세 불혹(不惑)의 시기를 지나고, 50이면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로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자신이 태어난 소명, 즉 천명(天命)을 알아 사는데 흐트러짐이 없어야 합니다. 물론 연암선생님이 세상의 평범한 삶에는 초연하였다고 하여도 천륜 앞에서는 어찌할 수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수 많은 사람들과 만남과 헤어짐의 과정입니다. 그런 만남 중에서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 천륜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가 부모를 선택할 수 없고, 형제자매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마음이 상해도 의절할 수도 없고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는다고 하여도 자고 나면 다시 보고 싶은 관계인 것입니다. 하지만 친구도, 연인도 선택할 수 있고, 친하게 지낼 수도 있고, 마음이 맞지 않아 관계를 단절할 수도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다시는 보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세상을 살면서 어려울 때도 있고, 기쁠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습니다. 이런 감정을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천륜관계인 것 같습니다. 평소에 서운하기도 하고, 밉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이 들어 살갑게 지낼 수 있는 사이가 형제자매입니다. 스스로 기대치를 낮추고 욕심을 조금씩 줄이면 불화가 줄어들겠지요. 요즘 신문에 형제간의 싸움이나 불화가 서로를 상(傷)하게 하고 죽게도 되고, 사법처리가 되기도 합니다. 물론 감정이 너무 격해지면 참기 어렵겠지만, 세상에 어느 인연보다 더 소중한 천륜이라고 한번 더 생각하면 많은 불화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참을 인(忍)자 세 번만 마음 속으로 새기면 살인도 피한다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세월이 흐르면서 나이가 들게 되고, 나이가 들면 죽습니다. 불교의 윤회설을 믿는다고 하여도 죽고 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 참에 내 자신을 뒤돌아 보는 시간을 가져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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