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학 총정리 9회 독일, 이스라엘, 정보기구 총론(1/2)
국가정보전략연구소
2011-04-16 오후 4:25:00
독일의 게르만민족은 강하고 우수한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중부유럽에 위치하고 있고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가 되어서야 민족적 자각의식이 깨우쳤다. 프러시아의 철의 재상으로 불린 비스마르크에 의해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갖추게 된다. 특히 나폴레옹 1세의 중부유럽, 러시아 등의 정복은 독일 국민들에게 굴욕을 가져다 주었고, 이어진 보불전쟁(1870~1871)의 승리로 사사건건 내정을 간섭하던 프랑스에게 일대 충격을 가하였다. 그 이후 1914년 1차 대전을 일으켰으나 연합국에 패하여 베르사유 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상비군의 금지, 병력 10만 유지, 전쟁 배상금 등은 독일 경제의 몰락과 국민들에게 고난을 안겨주었으며 결과적으로 히틀러라는 희대의 국수주의자를 탄생시킨 배경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히틀러의 나찌 독일은 체계적인 전쟁 준비와 적대국 정보의 수집으로 2차 대전을 일으켰고 일순간에 전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SD는 악명 높았던 나찌 친위대 SS 산하 정보기관이었고, Abwehr은 러시아. 프랑스, 독일, 노르웨이, 스페인, 남미 등 적대국과 중립국을 가리지 않고 정보활동을 한 군 정보기관이었다. 국가정보기관을 사유화하여 정권유지에 활용한 히틀러는 결국 연합국의 반격과 국민적 신뢰기반 붕괴로 전쟁에 패하게 된다.

1, 2차 대전의 일으킨 대가는 가혹해서 이후 독일은 군의 보유나 국가정보기관의 활동에 제도적인 제약을 받게 된다. 2차 대전 이후 미소 냉전은 30년대‘독소불가침조약’과 각종 군사교류로 독일이 수집한 소련정보의 활용가치가 상승하게 되었고 독일 정보기관의 역할을 일정부분 부활시킨 도화선이 된다. 라인하르트 겔렌 중령에 의해 창시된 Gelen Organisation은 이후 BND로 발전하게 되고, 동유럽과 경계선에 있던 지정학적인 요인에 의해 첩자들의 활동이 활발하게 되자 이를 탐색하는 방첩업무의 필요성은 영국의 MI5를 모델로 한 BfV(연방헌법보호청)이 설립근거가 되었다. MAD라는 군 정보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구 동독의 정보기관인 Stasi는 미남계공작인 로미오 공작, 각종 첩보활동에 혁혁한 공적을 남겼으며 특히 한때 10만명이 넘는 요원을 두고 동독 사회를 철통같이 감시하여 악명을 떨쳤다. 독일은 권력의 독점과 독재의 폐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절실하게 겪은 국가라 정보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감시에 대한 연구와 제도적 구비가 활발한 편이며, 영국과 미국 등의 독주에 반발하여 프랑스와 긴밀한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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