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레신문기사] 이것은 회사인가, 비밀조직인가 국정원 채용설명회
국가정보전략연구소
2019-03-19 오전 11:36:00
기관 창설 58년 만에 처음으로 ‘채용연계 인턴’ 선발

채용설명회장 앞에선 ‘카메라 촬영금지’ 스티커 부착

부정적 이미지 의식한 듯 유머러스한 분위기로 진행

지난 5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대 사이버관 대강당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채용설명회. 국가정보원 제공

“지금 ‘버닝썬’하고 연결돼 있는 분? 좀 조심하셔야 될 것 같아요. 어떻게 아느냐? 국정원이니까 압니다.”

진지하게 듣던 이들이 웃음을 빵 터트렸다. 4일 오후 3시, 연세대 신촌캠퍼스 공학원 지하 1층 대강당. 좌석 300개 규모의 강당에 200여명의 대학생이 모였다. 이들이 모인 건 2019년 국가정보원의 첫 채용설명회를 듣기 위해서다. 국정원은 2007년 이후 중단했던 대학가 채용설명회를 문재인 정부 집권 2년 차인 지난해부터 재개했다. 특히 올해의 경우 1961년 중앙정보부(국정원 전신)가 창설된 이후 58년 만에 처음으로 ‘채용연계형 인턴’을 선발하겠다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이달 15일까지 원서를 접수하는 ‘채용연계형 인턴’ 채용은 북한·정보기술(ICT)·대테러방첩 등 8개 분야(세부분야 32개)의 인턴을 모집한다. 이들은 4월 중 면접전형과 신체검사를 거쳐 6월 초부터 3개월간 기간제근로자 신분으로 ‘국정원 인턴’ 생활을 하게 된다. 10월 중 정규직 전환이 확정될 경우 정기공채 합격자들과 함께 내년 초 정식 임용될 예정이다.

이날 채용설명회도 새롭게 도입된 ‘채용연계형 인턴’ 원서 마감을 10여일 앞두고 자기소개서 작성이나 면접 등 전형에 대한 ‘꿀팁’을 얻으려 참석한 대학생들이 많았다. 참석자 가운데에는 자녀를 대신해 채용정보를 들으러 온 50대 부부도 있었다.

국정원 채용설명회는 출입부터 역시 ‘국정원다웠다.’ 설명회가 열리는 대강당 입구에선 국정원 직원 2명이 참석자들의 휴대전화 카메라에 ‘촬영금지’라고 적힌 빨간색 스티커를 부착했다. 설명회 일부 내용이 보안사항을 담고 있어서 카메라 촬영이나 녹음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휴대전화를 사용해야 할 경우 강당 밖에서 사용한 뒤 전원을 끄고 다시 입장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아, 누가 국정원 아니랄까 봐…” 잔뜩 ‘쫄보’가 된 채 채용설명회장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오후 3시 정각이 되자 자신을 ‘인사담당자’라고 소개한 40대 중후반의 남성이 마이크를 잡았다. “혹시 국정원 요원이 꼭 되고 싶어 오신 분 있을까요? 축하드립니다. 혹시 지나가다가 친구 따라 오신 분? 축하드립니다. 꼭 그런 분들이 돼요. (웃음)” 광화문 오피스타운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것 같은 인상의 인사담당자는 국정원에 대한 ‘어둠의 이미지’를 해소하려는 듯 시작부터 농담을 던지며 채용설명회를 시작했다.

국정원은 왜 58년 만에 ‘인턴 채용’이라는 실험(?)에 나서게 된 것일까. “(시험을 통해 뽑는) 정기공채로는 뽑기 어려운 ‘숨은 보석’을 찾는 겁니다. 성적, 자격증 같은 스펙보단 여러분이 그동안 대학생활을 하면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예를 들어 유튜브를 운영해 봤다든가 여행을 많이 다녀 지역 전문가라든가 다른 사람이 갖고 있지 않은 자신의 장점을 어필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숨은 보석’을 찾기 위한 인턴선발은 정기공채와는 전형부터 다르다. 일단 논술과 엔아이에이티(NIAT·국가정보적격성검사) 등 필기전형이 없다. 달리기 시험 등을 보는 체력 검정도 없다. 서류전형을 통과하면 바로 면접을 보고, 질병 여부 등을 평가하는 신체검사만 본다. ‘국정원이 서바이벌 오디션처럼 사람을 뽑는 것 아니냐’는 지원자들의 우려를 의식한 듯 이날 채용설명회에선 “(사기업처럼) 인턴을 ‘쓰버’(쓰다 버리다)하는 전형이 아니다”라는 직접적인 해명까지 등장했다.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서바이벌’ 형식이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프로듀스 101’ 아닙니다. 저희 인턴 ‘쓰버’ 이런 거 안 합니다.”

■국정원은 ‘SKY 캐슬?’…“그건 오해”라는 채용설명회

이날 채용설명회는 초반부터 국정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해소하기 위해 애를 쓴 티가 났다. 우선 국정원 채용 전형에 대한 4가지 오해(외모·학벌·정치성향·사회적 약자 차별)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국정원은 여성, 다문화,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지 않습니다. 지원자들의 성별, 사진 모두 블라인드 처리합니다. 오직 여러분 자체만 평가할 겁니다.”

유독 채용 전형의 ‘공정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국정원 요원처럼 이른바 ‘준수한 외모’를 평가 기준에 반영하지 않으며, 실제 국정원 직원 중에는 검정고시·학점은행제·지방대·국외대 등 다양한 출신이 있는 만큼 채용에 있어 학벌에 따른 차별은 없다는 설명이었다.

‘정치성향을 보고 채용하는 것 아니냐’는 항간의 의혹에 대한 답변도 나왔다. “좌파든, 우파든 모두 대한민국이 잘 되길 바라니까 그런 이상을 이야기하는 거 아닙니까? 국정원은 정치적인 성향을 갖고 선발하지 않습니다. 단, 국정원 직원이 되면 철저한 정치 중립을 지켜주셔야 합니다.”

물론 정보 기관 특성상 예외 조건은 있었다. 첫째, 외국 정보기관의 사주를 받고 지원한 경우. 둘째, 이적단체나 반국가 단체의 사주를 받고 입사를 시도하는 경우. 셋째, 국제범죄조직, 테러집단의 사주를 받고 입사하려는 경우는 탈락 대상이다. 다만 이날 국정원은 무엇을 ‘반국가·이적단체’로 규정하는지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았다.

■국정원이 원하는 인재는 ‘보안과 헌신의 아이콘’

채용설명회에서 반복해 강조됐던 국정원의 인재상은 ‘보안과 헌신의 아이콘’이었다. 그 이유는 국정원의 존재 이유와 밀접하다고 했다. “경찰은 치안 사건이 발생하면 출동해 사건을 처리합니다. 소방관은 불이 나면 불을 끕니다. 그런데 정보기관은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을 미리 알고 막아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드러낼 수 없고, 자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빛나 보이려는 사람보다 말없이 묵묵히 헌신할 수 있는 직원들이 필요합니다.”

국정원이 강조하는 ‘보안’은 아직 정식으로 채용되지 않은 지원자들에게도 엄격하게 적용된다. 국정원 시험의 ‘기출문제’는 철저히 보안을 유지해야 한다. 채용 규모나 경쟁률 등도 공개하지 않는다. 이를 공개할 경우 자칫 국외 정보기관에 ‘취약분야’를 노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원자 입장에선 ‘깜깜이 채용’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작년 같은 경우 엔아이에이티를 보고 나서 학원 등에서 모의면접을 보고 오시는 분이 계세요. 이때 (NIAT)문제를 학원에 말씀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부정행위로 간주해 전형 과정에서 전부 탈락시킬 겁니다. ‘내가 얘기한 걸 어떻게 국정원에서 알까?’하는데 저희는 국정원이니까 압니다. 이 순간부터 정보 요원이 됐다고 생각하시고 보안은 생활화하셔야 할 겁니다.” ‘버닝썬’에 이어 다시 한 번 등장한 “국정원이니까 압니다”라는 농담 같지 않은 농담에 식은땀이 났다. 이 회사, 어디 무서워서 다닐 수 있겠나.

‘보안’에 대한 국정원의 강박은 ‘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대표적인 것이 ‘문신’이다. 국정원 채용 전형에서 문신은 불합격 요소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정보 요원의 문신은 일종의 개인신상 정보를 상대에게 노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손목이나 발목 등에 개성으로 문신을 새겨 넣은 여성 지원자들의 주의가 요구됐다. 국정원 합격을 위한 해결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문신 제거 시술을 받으면 된다.

■처음 선발하는 ‘국정원 인턴’ 성공할까

15년 넘게 국가정보원 시험 강의를 해온 민진규 합격의법학원 강사는 국정원의 채용 시스템 변화에 대해 “문재인 정부 이후 국내 정보담당관 제도(IO)가 폐지되는 등 과거 논란이 됐던 국내 정보업무 분야가 축소되면서 수험생들 사이에서 국정원에 대한 이미지가 상당 부분 개선된 것은 물론 지원자들도 많이 늘어나는 추세”라며 “최근엔 국정원에서 해외 파트 업무를 할 기회가 넓어졌다는 생각에 해외 대학을 졸업한 유학생들이 국정원 입사를 준비하러 오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채용연계형 인턴선발에 대해선 일종의 ‘홍보성 이벤트 아니냐’라고 바라보는 시선도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날 채용설명회에서 국정원 쪽은 인턴제도 도입에 대해 “저희 입장에서 굉장히 오래 준비한 제도다. 많은 직원들이 머리가 하얘질 정도로 오랫동안 인턴 채용 전형을 설계했다”고 밝혔다. 인턴 전형과 정기공채 면접의 차이점을 묻는 참석자의 질문에 대해서도 “(정기공채 면접과는) 완전히 다르다”라고 설명했다.

‘프로듀스 101’같은 서바이벌 오디션도 아니고, ‘쓰버’(쓰다 버리다)도 안 하겠다는 ‘국정원 인턴’ 실험은 성공할 수 있을까.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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