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국정원 채용 준비방법 ⑱ 정치권력과 밀월로 얻은 상처 - 민진규 교수(합격의 법학원)
공무원수험신문 · 고시위크 | 2018.12.10 12:4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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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격의 법학원 국정원 직무마인드 전임 민진규 교수
최근 국내 정보기관인 국정원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이뤄진 불법 정치개입 관련 조사로 조직 내부가 뒤숭숭한 편이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적폐청산으로 불가피하다는 입장과 정치보복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지만 후자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있다.
국정원과 기무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던 전직 대통령 2명과 일부 정치인은 영어의 몸이 됐지만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다수의 정치인들은 장막 뒤로 숨었다. 하지만 전 현직 정보기관 수장과 직원들은 일부의 일탈행위로 인해 ‘먼지 털기’식 수사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중이다.
불법행위에 연루된 직원들은 일벌백계로 처벌해야 하지만 정작 대부분의 직원들은 상사의 명령과 조직에 대한 충성심으로 문제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연루된 것으로 판단된다. 지난 20여 년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정보기관 수장이나 핵심 인사가 전문성이나 능력과 무관하게 정치권에 줄을 대 낙하산을 타고 내려올 경우에 정치권력과 밀월 관계를 유지했다.
2018년 국정감사에서 국정원은 ‘탈정치, 탈권력 전문 정보기관으로 뿌리내렸다’는 자평을 내놓았다. 지난 10년 보수정부에서 정권안보를 위해 공공연히 국민을 적으로 삼고 권력을 행사했던 관행에서 벗어나 환골탈태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비밀을 생명으로 여기는 정보기관 내부에서 집행하는 일을 파악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야당은 국정원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지 못하는 눈치이다. 국정원은 몇 차례 개최된 남북 정상회담을 주도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과거와 달리 전면에서 나서면서 긍정적, 부정적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다.
북한에 대한 정보를 국정원이 가장 많이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엄중한 남북 군사 대치상황에서 국정원이 방첩과 대북정보활동이라는 본연의 임무에 소홀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증폭되고 있다. 일부 정치인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남북대화가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국정원의 지나친 개입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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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게이트의 제보자 FBI 부국장 ‘마크 펠트’를 그린 영화(2017년)
▶ 국민에게 미친 야수의 발톱과 이빨을 휘두르면 야비한 칼잡이에 불과해
국정원이 1961년 창설된 이후 57년동안 정치권력가 밀월을 즐기면서 얻은 상처는 정권의 호위무사에 불과하다는 부정적 평가, 본연의 임무수행 능력 저하, 직원들의 가치관 혼란 초래 등이라고 볼 수 있다. 세부 내역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정원은 권력에 대항할 수 잠재적 위협을 분쇄하는 호위무사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배여 있다. 호위무사는 주군을 위해서라면 누구든지 가리지 않고 칼을 휘두른다. 5〮16 군사 쿠데타 세력이 주도한 중앙정보부, 12〮12 군사 쿠데타 세력이 조직의 힘을 빼기 위해 명칭을 변경한 국가안전기획부가 대표적이다.
이들 기관의 수장과 주요 인사들은 쿠데타 세력에 포함됐거나 동조세력으로 정보기관과 정권을 운명공동체로 인식했다. 중앙정보부의 초대 부장으로 박정희 정권의 기반을 닦았던 김종필, 역대 국정원 수장 중 가장 오랜 기간 역임하면서 박정희 정권을 옹호했던 김형욱, 유신정권에 반대하던 학생과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 탄압을 주도한 김재규가 대표적인 수장이다. 김형욱과 김재규는 정권의 호위무사였지만 말년에 반정부 활동의 첨병에 섰다가 불행한 최후를 맞이했다.
국가안전기획부도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위대 역할에 충실했고, 대표적인 인사는 장세동이었다. 12〮12군사 쿠데타의 주역인 전두환, 노태우 정부에서 장세동을 제외하고 두드러진 수장은 없었지만 정권안보라는 지상 최대 과제는 바뀌지 않았다. 군사정권과 결별했다고 선언했던 김영삼 정부에서도 정권안보를 위한 조직적 활동은 변하지 않았다.
둘째, 국정원이 정권안보에 몰두하면서 본연의 임무수행 능력은 저하됐다. 국가안보를 위한 방첩활동을 강화하고, 국가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해외 정보활동에 전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국내 정치정보 수집에 전념했다. 여야를 불문하고 정치인을 불법적으로 미행하거나 도청했고, 학생과 노동자들의 민주화 운동을 좌초시키기 위해 프락치를 침투시켜 분열시키거나 불온세력으로 포장했다.
한국의 국가체제를 전복시키려는 북한과 기타 주변 국가의 간첩활동을 감시해야 할 방첩활동은 노동운동을 탄압하고 무고한 국민에게 잔학한 고문을 가해 간첩으로 조작하는 공작으로 변질됐다. 노동운동가들을 북한의 통일전선전술에 동조한 간첩단으로 몰고 가거나 선량한 납북 어부가 남파 간첩이 되는 일이 일상적으로 반복됐다.
정치사찰을 위한 국내정보활동에 전념하면서 해외정보활동은 소홀해졌다. 정치에 깊숙이 관여하고 초고속 승진이 보장되는 국내 정치 파트가 중시되면서 정작 해외정보활동에 대한 역량은 퇴화됐다. 흑색정보관(black officer)을 육성하고 파견하는 것은 사치에 불과했고 백색정보관(white officer)조차도 정보활동보다는 여권 연장이나 비자발급 등에 관여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셋째, 오랜 기간 동안 국정원의 일탈행위로 인해 직원들은 가치관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쳐 헌신하겠다는 일념을 갖고 있지만 정작 국가가 누구인지, 어떻게 국가를 위한 일을 할 수 있는지 판단하지 못하는 것이다.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한 독재자와 자신의 영달을 위해 독재자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조직의 수장을 국가로 착각하기도 했다.
지난 57년 동안 한국 최고 정보기관 직원들은 군사 쿠데타를 감행해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고 민주적으로 구성된 정부를 무너뜨린 독재자가 수립한 정권을 옹호하고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을 탄압했다. 일부 조직원들은 자신들의 일탈행위를 애국으로 여겼을 정도로 국가를 위한 일이 무엇인지조차도 알지 못한 한심한 사람들이었다.
지난 보수정권 10년 동안 국내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전 현직 직원들도 모두 스스로 최고의 애국자라고 여겼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초등학생도 정보기관의 일탈행위가 잘못된 것이라고 알 수 있는데, 정작 국내 최고의 엘리트들은 무능한 지도자가 추진한 잘못된 정부정책을 옳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21세기 한국 최고 정보기관과 정치권이 ‘벌거벗은 임금님’ 놀이를 10년 동안 즐긴 셈이다.
결론적으로 국정원은 정치권력과 야합해 권력을 휘둘러다가 부도덕한 정권의 호위무사, 본연의 임무수행 능력 퇴화, 직원들의 가치관 혼란 등 오히려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은 상처만 수 없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엄청난 예산과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국가정보기관이 자신들의 권력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국가의 주인인 국민들에게 미친 야수의 발톱과 이빨을 사용한 것이다.
역사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려는 지도자의 호위무사는 만고의 충신이지만 부도덕하고 사익을 추구하는 독재자의 호위무사는 ‘야비한 칼잡이’에 불과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수장과 직원을 1명도 배출하지 못했다는 것은 어떠한 해명도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것도 유념해야 한다.
▶ 애국으로 얻는 이익의 가장 큰 수혜자는 국가가 아니라 자신
국정원이 정치화되고 불법적인 정치활동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정치권의 문제인지, 아니면 국가정보기관 자체의 속성 때문인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정보기관은 국내외의 고급정보를 정치권보다 몇 발자국 앞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악용해 권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을 수 있다.
권력욕은 인간의 본성이고, 국가정보기관의 수장이나 직원이 권력욕을 갖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국민이 부여한 신성한 권한과 예산을 본연의 임무가 아니라 자신의 출세와 권력을 확장하는데 활용하는 것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국가정보원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나락으로 떨어졌고, 소속 직원들의 충만한 자부심도 여지없이 뭉개졌다고 봐야 한다. 국가정보원이 과거의 역사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과 이를 실천해 조직의 위상을 재정립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탈정치와 탈권력을 구호가 아니라 실천하기 위해 원장과 직원 모두가 합심해 노력해야 한다. 원장과 기조실장 등 핵심인사는 조직 전체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외풍을 막는데 자신의 직책을 걸어야 한다. 정치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지만 자리에 연연하다가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은 사례를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한다.
직원들도 일부 몰지각한 수장과 정치인이 당근을 던질 때 초연해질 수 있도록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국민에게 봉사하는 서비스 기관이 되겠다며 명칭을 몇 번이나 변경했지만 지난 20년 동안 정치권력과 야합해 여전히 국민 위에 군림했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제 더 이상 늦기 전에 정치와 멀어지고,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둘째, 직원들을 대상으로 직업윤리 교육을 강화해 개인 혹은 조직 차원의 일탈행위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지원해야 한다. 지능지수(IQ)가 높고 좋은 학교를 졸업했다고 윤리의식이 높은 것이 아니며 또한 올바른 윤리의식을 가졌다고 보기도 어렵다. 한국의 정치인, 공무원, 기업가 등 최고 엘리트 중에서 윤리의식이 초등학생보다 못한 사람이 너무나 많은 것이 현실이다.
윤리교육은 단기적인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초지일관 곧은 신념과 바른 윤리를 실천해 성공한 내외부의 사례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좋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한번뿐인 인생이 짧다고 생각해 조급한 마음에 불의와 쉽게 타협하지만 결국 자신의 인생에 불행을 자초하게 된다. 과거와 달리 아무리 정보기관 내부의 비밀업무라고 해도 영원히 비밀로 숨길 수 없고, 잘못한 행위는 살아 생전에 반드시 처벌 받는다는 점도 강조해야 한다.
셋째, 직원 스스로 부정한 업무를 수행하고 불법행위를 자행하면 자신의 영혼이 먼저 파괴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성과를 내고 승진을 하기 위해 무고한 시민을 범죄자로 조작하고, 협박 및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이끌어 내는 사람이 정상적인 인성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가정이 파괴되고 사회로부터 소외되면 자신의 소중한 인생도 자연스럽게 파탄 나게 된다.
‘이슬비에 속옷 젖는다’는 속담처럼 사소한 일탈행위도 누적되면 부지불식 간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권력을 남용해 선량한 국민의 가슴에 못을 박고 피눈물을 흐르게 만든 공무원들이 영혼이 파괴되면서 비참한 말년을 보내는 사례는 너무 많아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나만은 예외겠지’라고 착각하는 순간이 파멸로 접어드는 출발점이 된다고 믿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지난 역사를 통해 얻은 교훈을 요약하면 국정원 수장과 직원이 합심해 탈정치와 탈권력을 실천, 직업윤리 교육을 통해 일탈행위의 유혹을 방어하도록 지원, 불법행위는 자신의 영혼을 먼저 파괴한다는 인식 필요 등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 현재 국가를 위해 봉사하라고 쥐여준 막강한 권력을 사익을 위해 휘두르는 국정원 직원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깨우치기를 바란다.
지난 30여년 동안 정보전문가로 살아오면서 수 많은 관련자를 만나고 대화했다. 젊은 시절에는 열정이 넘쳐서 논쟁과 토론을 즐겼고, 나이가 들면서 ‘꼰대’라는 소리를 들어도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선후배들에게 지혜를 나눠주기 위해 노력했다.
공무원을 만나면 필자는 오늘도 변함없이 초지일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기 위해 직업을 선택한 초심을 잊지 말라고 조언한다. 봉사하는 삶을 선택한 사람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자신의 영혼이 먼저 맑아져서 자신이 도움을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움을 받았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올바른 애국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의 가장 큰 수혜자는 국가가 아니라 공무원 자신이라는 점도 명심할 필요가 있다.
– 계속 –
* 칼럼내용 문의 : 민진규 교수(stm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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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격의 법학원 국정원 직무마인드 전임 민진규 교수
최근 국내 정보기관인 국정원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이뤄진 불법 정치개입 관련 조사로 조직 내부가 뒤숭숭한 편이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적폐청산으로 불가피하다는 입장과 정치보복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지만 후자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있다.
국정원과 기무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던 전직 대통령 2명과 일부 정치인은 영어의 몸이 됐지만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다수의 정치인들은 장막 뒤로 숨었다. 하지만 전 현직 정보기관 수장과 직원들은 일부의 일탈행위로 인해 ‘먼지 털기’식 수사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중이다.
불법행위에 연루된 직원들은 일벌백계로 처벌해야 하지만 정작 대부분의 직원들은 상사의 명령과 조직에 대한 충성심으로 문제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연루된 것으로 판단된다. 지난 20여 년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정보기관 수장이나 핵심 인사가 전문성이나 능력과 무관하게 정치권에 줄을 대 낙하산을 타고 내려올 경우에 정치권력과 밀월 관계를 유지했다.
2018년 국정감사에서 국정원은 ‘탈정치, 탈권력 전문 정보기관으로 뿌리내렸다’는 자평을 내놓았다. 지난 10년 보수정부에서 정권안보를 위해 공공연히 국민을 적으로 삼고 권력을 행사했던 관행에서 벗어나 환골탈태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비밀을 생명으로 여기는 정보기관 내부에서 집행하는 일을 파악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야당은 국정원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지 못하는 눈치이다. 국정원은 몇 차례 개최된 남북 정상회담을 주도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과거와 달리 전면에서 나서면서 긍정적, 부정적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다.
북한에 대한 정보를 국정원이 가장 많이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엄중한 남북 군사 대치상황에서 국정원이 방첩과 대북정보활동이라는 본연의 임무에 소홀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증폭되고 있다. 일부 정치인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남북대화가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국정원의 지나친 개입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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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게이트의 제보자 FBI 부국장 ‘마크 펠트’를 그린 영화(2017년)
▶ 국민에게 미친 야수의 발톱과 이빨을 휘두르면 야비한 칼잡이에 불과해
국정원이 1961년 창설된 이후 57년동안 정치권력가 밀월을 즐기면서 얻은 상처는 정권의 호위무사에 불과하다는 부정적 평가, 본연의 임무수행 능력 저하, 직원들의 가치관 혼란 초래 등이라고 볼 수 있다. 세부 내역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정원은 권력에 대항할 수 잠재적 위협을 분쇄하는 호위무사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배여 있다. 호위무사는 주군을 위해서라면 누구든지 가리지 않고 칼을 휘두른다. 5〮16 군사 쿠데타 세력이 주도한 중앙정보부, 12〮12 군사 쿠데타 세력이 조직의 힘을 빼기 위해 명칭을 변경한 국가안전기획부가 대표적이다.
이들 기관의 수장과 주요 인사들은 쿠데타 세력에 포함됐거나 동조세력으로 정보기관과 정권을 운명공동체로 인식했다. 중앙정보부의 초대 부장으로 박정희 정권의 기반을 닦았던 김종필, 역대 국정원 수장 중 가장 오랜 기간 역임하면서 박정희 정권을 옹호했던 김형욱, 유신정권에 반대하던 학생과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 탄압을 주도한 김재규가 대표적인 수장이다. 김형욱과 김재규는 정권의 호위무사였지만 말년에 반정부 활동의 첨병에 섰다가 불행한 최후를 맞이했다.
국가안전기획부도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위대 역할에 충실했고, 대표적인 인사는 장세동이었다. 12〮12군사 쿠데타의 주역인 전두환, 노태우 정부에서 장세동을 제외하고 두드러진 수장은 없었지만 정권안보라는 지상 최대 과제는 바뀌지 않았다. 군사정권과 결별했다고 선언했던 김영삼 정부에서도 정권안보를 위한 조직적 활동은 변하지 않았다.
둘째, 국정원이 정권안보에 몰두하면서 본연의 임무수행 능력은 저하됐다. 국가안보를 위한 방첩활동을 강화하고, 국가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해외 정보활동에 전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국내 정치정보 수집에 전념했다. 여야를 불문하고 정치인을 불법적으로 미행하거나 도청했고, 학생과 노동자들의 민주화 운동을 좌초시키기 위해 프락치를 침투시켜 분열시키거나 불온세력으로 포장했다.
한국의 국가체제를 전복시키려는 북한과 기타 주변 국가의 간첩활동을 감시해야 할 방첩활동은 노동운동을 탄압하고 무고한 국민에게 잔학한 고문을 가해 간첩으로 조작하는 공작으로 변질됐다. 노동운동가들을 북한의 통일전선전술에 동조한 간첩단으로 몰고 가거나 선량한 납북 어부가 남파 간첩이 되는 일이 일상적으로 반복됐다.
정치사찰을 위한 국내정보활동에 전념하면서 해외정보활동은 소홀해졌다. 정치에 깊숙이 관여하고 초고속 승진이 보장되는 국내 정치 파트가 중시되면서 정작 해외정보활동에 대한 역량은 퇴화됐다. 흑색정보관(black officer)을 육성하고 파견하는 것은 사치에 불과했고 백색정보관(white officer)조차도 정보활동보다는 여권 연장이나 비자발급 등에 관여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셋째, 오랜 기간 동안 국정원의 일탈행위로 인해 직원들은 가치관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쳐 헌신하겠다는 일념을 갖고 있지만 정작 국가가 누구인지, 어떻게 국가를 위한 일을 할 수 있는지 판단하지 못하는 것이다.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한 독재자와 자신의 영달을 위해 독재자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조직의 수장을 국가로 착각하기도 했다.
지난 57년 동안 한국 최고 정보기관 직원들은 군사 쿠데타를 감행해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고 민주적으로 구성된 정부를 무너뜨린 독재자가 수립한 정권을 옹호하고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을 탄압했다. 일부 조직원들은 자신들의 일탈행위를 애국으로 여겼을 정도로 국가를 위한 일이 무엇인지조차도 알지 못한 한심한 사람들이었다.
지난 보수정권 10년 동안 국내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전 현직 직원들도 모두 스스로 최고의 애국자라고 여겼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초등학생도 정보기관의 일탈행위가 잘못된 것이라고 알 수 있는데, 정작 국내 최고의 엘리트들은 무능한 지도자가 추진한 잘못된 정부정책을 옳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21세기 한국 최고 정보기관과 정치권이 ‘벌거벗은 임금님’ 놀이를 10년 동안 즐긴 셈이다.
결론적으로 국정원은 정치권력과 야합해 권력을 휘둘러다가 부도덕한 정권의 호위무사, 본연의 임무수행 능력 퇴화, 직원들의 가치관 혼란 등 오히려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은 상처만 수 없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엄청난 예산과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국가정보기관이 자신들의 권력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국가의 주인인 국민들에게 미친 야수의 발톱과 이빨을 사용한 것이다.
역사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려는 지도자의 호위무사는 만고의 충신이지만 부도덕하고 사익을 추구하는 독재자의 호위무사는 ‘야비한 칼잡이’에 불과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수장과 직원을 1명도 배출하지 못했다는 것은 어떠한 해명도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것도 유념해야 한다.
▶ 애국으로 얻는 이익의 가장 큰 수혜자는 국가가 아니라 자신
국정원이 정치화되고 불법적인 정치활동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정치권의 문제인지, 아니면 국가정보기관 자체의 속성 때문인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정보기관은 국내외의 고급정보를 정치권보다 몇 발자국 앞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악용해 권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을 수 있다.
권력욕은 인간의 본성이고, 국가정보기관의 수장이나 직원이 권력욕을 갖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국민이 부여한 신성한 권한과 예산을 본연의 임무가 아니라 자신의 출세와 권력을 확장하는데 활용하는 것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국가정보원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나락으로 떨어졌고, 소속 직원들의 충만한 자부심도 여지없이 뭉개졌다고 봐야 한다. 국가정보원이 과거의 역사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과 이를 실천해 조직의 위상을 재정립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탈정치와 탈권력을 구호가 아니라 실천하기 위해 원장과 직원 모두가 합심해 노력해야 한다. 원장과 기조실장 등 핵심인사는 조직 전체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외풍을 막는데 자신의 직책을 걸어야 한다. 정치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지만 자리에 연연하다가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은 사례를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한다.
직원들도 일부 몰지각한 수장과 정치인이 당근을 던질 때 초연해질 수 있도록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국민에게 봉사하는 서비스 기관이 되겠다며 명칭을 몇 번이나 변경했지만 지난 20년 동안 정치권력과 야합해 여전히 국민 위에 군림했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제 더 이상 늦기 전에 정치와 멀어지고,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둘째, 직원들을 대상으로 직업윤리 교육을 강화해 개인 혹은 조직 차원의 일탈행위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지원해야 한다. 지능지수(IQ)가 높고 좋은 학교를 졸업했다고 윤리의식이 높은 것이 아니며 또한 올바른 윤리의식을 가졌다고 보기도 어렵다. 한국의 정치인, 공무원, 기업가 등 최고 엘리트 중에서 윤리의식이 초등학생보다 못한 사람이 너무나 많은 것이 현실이다.
윤리교육은 단기적인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초지일관 곧은 신념과 바른 윤리를 실천해 성공한 내외부의 사례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좋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한번뿐인 인생이 짧다고 생각해 조급한 마음에 불의와 쉽게 타협하지만 결국 자신의 인생에 불행을 자초하게 된다. 과거와 달리 아무리 정보기관 내부의 비밀업무라고 해도 영원히 비밀로 숨길 수 없고, 잘못한 행위는 살아 생전에 반드시 처벌 받는다는 점도 강조해야 한다.
셋째, 직원 스스로 부정한 업무를 수행하고 불법행위를 자행하면 자신의 영혼이 먼저 파괴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성과를 내고 승진을 하기 위해 무고한 시민을 범죄자로 조작하고, 협박 및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이끌어 내는 사람이 정상적인 인성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가정이 파괴되고 사회로부터 소외되면 자신의 소중한 인생도 자연스럽게 파탄 나게 된다.
‘이슬비에 속옷 젖는다’는 속담처럼 사소한 일탈행위도 누적되면 부지불식 간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권력을 남용해 선량한 국민의 가슴에 못을 박고 피눈물을 흐르게 만든 공무원들이 영혼이 파괴되면서 비참한 말년을 보내는 사례는 너무 많아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나만은 예외겠지’라고 착각하는 순간이 파멸로 접어드는 출발점이 된다고 믿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지난 역사를 통해 얻은 교훈을 요약하면 국정원 수장과 직원이 합심해 탈정치와 탈권력을 실천, 직업윤리 교육을 통해 일탈행위의 유혹을 방어하도록 지원, 불법행위는 자신의 영혼을 먼저 파괴한다는 인식 필요 등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 현재 국가를 위해 봉사하라고 쥐여준 막강한 권력을 사익을 위해 휘두르는 국정원 직원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깨우치기를 바란다.
지난 30여년 동안 정보전문가로 살아오면서 수 많은 관련자를 만나고 대화했다. 젊은 시절에는 열정이 넘쳐서 논쟁과 토론을 즐겼고, 나이가 들면서 ‘꼰대’라는 소리를 들어도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선후배들에게 지혜를 나눠주기 위해 노력했다.
공무원을 만나면 필자는 오늘도 변함없이 초지일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기 위해 직업을 선택한 초심을 잊지 말라고 조언한다. 봉사하는 삶을 선택한 사람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자신의 영혼이 먼저 맑아져서 자신이 도움을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움을 받았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올바른 애국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의 가장 큰 수혜자는 국가가 아니라 공무원 자신이라는 점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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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내용 문의 : 민진규 교수(stm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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