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한반도의 자유민주주의 통일비전과 과제(1)
한반도의 자유민주주의 통일비전과 과제(1)
2010년 3월 천안함 침몰, 11월 연평도 포격사건 등으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여러 강대국의 강경발언과 한국정부의 대북정책 등으로 인하여 625전쟁 이후 가장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북한 김정일위원장의 건강 악화설, 3대 세습과 핵개발 등으로 북한정권의 운명도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이 글은 한국선진화재단과 동아일보사 화정평화재단이 2010년 12월7일 신라호텔에서 공동주최한 <통일준비: 누가, 무엇을, 어떻게>란 제하의 세미나에서 송종환 명지대 북한학과 초빙교수가 제1부 '한반도 통일비전과 공동체추진전략'의 주제발표자로 발표한 것을 정리한 것입니다. 물론 이 분의 주장이 모두 옳거나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고, 학자의 의견으로 충분히 고민할 여지는 있어 소개한다.
한반도의 자유민주주의 통일비전과 과제(上)
차례
1. 남북대화 개시 이후 성찰을 통한 문제의 제기
2. 한반도의 자유민주주의 통일 예상 시기와 객관적 환경
3.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의 유익과 주도•동행할 주체
4.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위한 한국의 정책과 과제(I): 튼튼한 안보, 국내체제의 선진화와 이를 뒷받침할 외교 강화
5.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위한 한국의 정책과 과제(II): 북한체제 변화 유도 대북정책, 북한급변사태•탈북자 대책과 통일 후 과제
6. 맺는 말
1. 남북대화 개시 이후 성찰을 통한 문제의 제기
1971년 8월 20일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원회에서 남북이산가족찾기를 위하여 남북적십자사 파견원 접촉이 있은 이후 지금까지 공개 리에 개최된 회담이 총리 간 회담, 정상간 회담 등을 포함하여 총 605회(정치 분야 248회, 군사 분야 48회, 경제 분야 105회, 인도 분야 150회, 사회 문화 분야 54회) 개최되었다.
국민의 염원을 안고 전 세계가 주시하는 가운데 회담들이 개최되었으나, 남북한 관계 개선과 통일을 위하여 이렇다 할 의미 있는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오히려 서로 불신하고 특히 한국에서는 남북대화에 거는 기대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이렇게 남북한 관계가 의미 있는 진전을 보이지 않는 데에는 기본적으로 북한 측이 한국과의 상생 공영은커녕 공산화 통일을 버리지 않고 남북한 간에 협상의 개념이 상이(1)한데도 있지만, 통일을 이룩한 서독에 비하여 한국 측이 잘 못 한 부분도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남북한 간의 대화를 시작하였을 때에 비추어 북한이 한국에 비하여 정치, 경제적으로 또 국제적 위상도 상대가 되지 않는 상황이므로 지난날을 돌아보는 것이 앞으로 통일의 결의를 다지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첫째, 적극적인 통일정책이 없었고 대북정책의 최종 목표가 한국 헌법이 명시한 자유민주주의 통일 실현임을 분명히 하지 않고, 북한을 포용할 것인가, 압박할 것인가 하는 논쟁만 무성하여 국민들 사이에 혼란과 갈등과 분열만이 증폭되었다. 그 원인은 대북정책을 국내정치에 이용하고 대통령 개인의 이념과 소신으로 헌법 4조가 천명한 ‘자유민주주의적 평화통일’을 무시하였기 때문이다.(2)
둘째, 합의서 채택 시의 문제점이다. 한국은 합의 당시부터 남북한이 의도하는 바와 해석이 다르나 전략적 목표 달성을 위하여 애매모호한 용어로 된 문서에 합의를 하였다. 이러한 합의서 채택은 이행문제를 협의하는 단계에 이르러 남북한이 각기 달리하였던 의도와 해석이 구체화되어 좀처럼 의견 접근이 되지 않은 경우와 북한 측이 세 불리를 모면할 목적으로 일단 합의한 후 이를 아예 이행하려 하지 않는 경우를 초래하였다.
「7. 4 남북공동성명」과「6. 15 남북공동선언」이 전자의 경우라고 한다면 서독으로의 동독 흡수, 동구・소련 등 공산진영의 붕괴로 인한 급변하는 국제정세 하에서 외교적 고립과 안보위기 의식으로 절박하였던 북한 측이 체제보호를 위하여 대폭 양보를 하였던「남북기본합의서」는 후자를 대표하는 예라고 할 수 있다.(3)
셋째, 북한의 잘 못이나 합의 후 불이행에 대하여 사과나 벌을 강요하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0년 8월 15일 광복 25주년 경축사에서「8•15 평화통일구상 선언」을 발표하면서 북한이 “무력에 의한 적화통일이나 폭력혁명에 의한 대한민국의 전복기도를 완전히 포기할 것”을 전제로 남북한 간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북한의 태도변화가 없고 테러 자행, 핵무기 개발 등으로 더 강경해졌는데도 한국 정부는 북한에 벌칙을 가하지 않고 북한이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대화를 중단한 후 대화에 돌아오더라도 문제시하지 않았다.
북한이 남북한 간의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 한국이 북한의 이행을 강요하는 의지가 없을 경우 “조약은 준수되어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라는 국제법의 근본규범(Grundnorm) 자체를 부인하게 되었고 남북한 간에는 합의 후 불이행하는 것이 관행이 되고 말았다.
특히 좌파정부의 대화 기간 중에는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하더라도 따뜻하게 포용하면서 일방적으로 지원하고 교류•협력을 하면 중국처럼 개혁하고 변화할 것이라는 기조의 대북포용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안보기조가 흔들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남북대화를 목표도 분명하지 않고 이렇다 할 성과도 없이 남북한이 접촉과 대화를 하는 사이에 특히 1998년 2월부터 2008년 2월 집권한 좌파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을 거치면서 한국에서는 한국체제로의 통일을 소극적으로 보거나 회피, 부정 내지 반대하는 견해가 확산되는 지극히 우려되는 일들이 벌어졌다.
1990년 10월 3일 독일 통일 이후의 막대한 통일비용이 문제시됨에 편승하여 김대중 전 대통령은 흡수통일을 반대하면서 흡수통일=막대한 통일비용이라는 등식을 국민들의 뇌리에 각인시키고 통일보다 분단 유지 내지 관리가 더 좋다는 것을 확산시켰다.(4)
좌파들은 현재의 북한 수령유일지배체제가 존속할 수 없게 되는 흡수통일이 될 경우 남북한 간에 전쟁이 일어나거나 중국군이 북한 지역에 진입할 위험이 있음을 여론화하는데 성공하였다.
좌파들은 대북포용정책이 오늘날 북한 상황과 도발에 비추어 성과가 없었다고 지적하면 “그러면 북한과 전쟁하겠다는 뜻이냐”고 까지 반발하면서 미안함과 사과를 모르는 북한과 계속 대화해야 하고 고마움과 감사를 모르는 북한에 계속 지원해야 한다고 하면서 심지어 북한이 변화하지 않은 것은 한국과 미국 탓이라고 주장하는 의견도 우려할 정도로 많다.
좌파들 중에는 핵•미사일•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여 세계 평화와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북한의 수령유일지배체제를 지지하면서 종북하면서 한국을 위태롭게 하는 부류도 있다. 이들은 어떠한 체제로든 빨리 통일하는 것이 좋다는 통일지상론을 펴면서 마치 자유민주주의체제와 수령유일지배독재체제를 절충하는 제3의 길이 있는 듯이 호도하여 기적과 같이 발전한 대한민국을 거부하고 자유민주주의체제로의 통일을 부정하고 있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위에서 지적한 이러한 현상들은 북한이「6•15 남북공동선언」과「10•4 선언」합의로 북한의 대남전략과 통일정책인 자주(주한미군철수), 민주(국가보안법 철폐), 통일(북한식 연방제 통일)을 문서화한 후 이를 적극 추진하고자 하는데 대해 한국의 좌파정부가 대북 유화적 견지에서 이를 반대•차단하지 않거나 동조하였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2008년 2월 좌파정부 종식 후 새로운 패러다임 내지 남북한 관계 정립 주장이 강하게 대두되면서「한반도선진화재단」중심으로 목표•가치 지향의 ‘선진화통일방안’(5)이 제기되고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8월 15일 제65주년 경축사에서 통일세 준비 논의를 제안한 이래 학계에서는 통일의 편익이 비용보다 크다는 토론이 활발해지고 있다.
이러한 학계의 움직임을 선도하고 있는「한반도선진화재단」이 주최하는 세미나에 1970년대 초 남북대화에 참가한 제1세대 중 마지막 남은 활동가 중의 한 사람으로서 전체 국민의 통일 염원에 부응하고 이러한 새로운 움직임에 기여하기 위하여 오늘 주제 발표에 임한다.
주)
1) 남북한 간의 협상 개념 상이에 대한 상세는 송종환,『북한 협상행태의 이해』(서울: 오름, 2007), 개정증보판을 참조.
2) 박세일, “한반도의 선진화 통일론,” 선진통일연합 발기인대회 자료집「21세기 대한민국의 비전」(2010. 11. 23) pp. 21-28.
3) 송종환, “분쟁해결수단으로서의 남북협상: 실제와 교훈,”「한반도 평화회담의 과거와 현재」, 통일연구원•대한국제법학회 공동학술회의 발표논문집(2004. 6. 25), p. 40
4) 조영기 외, 「미래지향형 통일방안 연구-‘선진화통일방안’의 모색을 중심으로-」(서울: 한반도선진화재단, 2009), pp. 48-49.
5) 한반도 선진화재단」의 ‘선진화통일’의 목표와 가치는 한반도 위에 선진일류국가를 건설하여 동북아와 아시아 전체의 영구평화와 번영에 공헌하여 북한 동포의 고통을 해방하고 새로운 성공적 민족사를 건설하는데 있다. 박세일(2010. 11. 23), pp. 15-17.
2. 한반도의 자유민주주의 통일 예상 시기와 객관적 환경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지만, 역사의 진운은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유사한 사례가 있다. 소련의 반체제론자인 안드레이 아말릭(Amalrik, 1938~1980)은 소련이 세계 최강인 미국과 양극체제로 전성기를 누리던 1970년도에『소련은 1984년까지 존속할 것인가』제하 소책자(6)에서 소련은 체제 내 사회적, 인종적 적대의식과 중국과의 전쟁으로 1980년부터 1985년 사이에 붕괴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당시 미국 학계는 아말릭의 주장을 신뢰하지 않았고 별로 주목하지도 않았으나, 소련은 1991년 붕괴되어 독립국가연합체제로 재편되었으며, 그 중심인 러시아연방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체제를 전환하였으며(7), 소련을 추종하였던 공산주의 국가들은 오늘날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몇 개 나라에 불과하고 그들마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변혁을 꾀하고 있다.
공산주의를 표방해온 국가들이 겪은 경험에 비추어 북한의 수령유일지배체제의 장래는 3대 세습 전후로 루마니아 차우체스크(Ceauscescu) 식으로 붕괴, 중국ㆍ베트남 식으로 개혁ㆍ개방, 러시아식으로 체제를 전환하거나 어렵지만 지금의 체제를 고수해 나가는 네 가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2005년도 미국의 랜드연구소는 「북한의 역설: 한반도 통일의 상황, 비용 및 결과(North Korean Paradoxes: Circumstances, Costs and Consequences of Korean Unification」제하의 보고서에서 체제진화와 통합을 통한 통일, 붕괴와 흡수를 통한 통일, 분쟁을 통한 통일 등 3가지 통일 시나리오 중 두 번째 시나리오에 의한 통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였다. (8)
2008년 11월 미국의 국가정보위가 발표한『2025년의 변화된 세계』제하보고서는 2025년까지 한반도에는 단일국가는 아니지만 느슨한 남북한연합 형태의 통일국가가 있게 될 것으로 전망하였다.(9)
2008년 12월 박영숙ㆍ제롬 글렌ㆍ테드 고든이 지은『미리 가본 2018년 유엔미래보고서』에 의하면, 2015년이 되면 북한도 후기정보화시대에 접어들어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통한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게 된다. 이에 따라 개개인이 지금보다 똑똑해지고 더 많은 정보를 갖게 돼 더 이상 권력 세습이 불가능해지고 북한체제의 점진적 붕괴로 2020년이 되면 남북한이 통일될 확률이 거의 90%에 달한다고 예측하였다. (10)
2009년 1월『월간 조선』과 삼성경제연구소가 공동 기획하여 발간한 『2030년의 대한민국』에서 김진현은 한국이 선진국으로의 국격(國格)이 정착된 후 북한이 군사도발을 하면 확실히 보복하고 통일을 성취하겠다는 의지와 능력을 북한과 전 세계에 보일 경우 2030년 경 통일을 바라볼 수 있다고 전망하였다. (11)
조지 프리드먼은 2009년 발간한 그의 저서 『100년 후(Next 100 Years)』에서 한국은 (북한 붕괴로) 2030년이 되기 훨씬 이전에 통일이 될 것 같다고 전망하였으며(12) 2010년 1월 1일 하버드대의 니알 퍼거슨(Ferguson) 교수는 북한은 앞으로 10년 이상 존재하지 못할 것이며, 한반도의 재통일이 향후 10년간 가장 역사적인 사건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13)
2010년 하반기에 서울대 평화통일연구소와 한반도선진화재단이 실시한 통일문제 등에 대한 의식조사 발표에 의하면, 예상되는 통일시기가 지금부터 20년 내가 각기 45. 3%, 57. 9%, 20년 이상이 34.2%, 27.5%로 보다 더 걸릴 것으로 예상하였다. (14) 미국 국가정보 위원회 보고서를 제외한 여타 연구의 전망들은 북한 붕괴 후 한국 주도로 통일이 될 것임을 분명히 하고 통일 시기는 2020년~ 2030년 사이에 될 것으로 전망하는 것이 다수가 되고 있다.
이상의 전망을 구 소련의 붕괴와 연결시켜보면 북한은 지금부터 2022년 사이 그 어느 날 붕괴되어 한반도는 한국 주도의 통일 기회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예측은 소련이 1917년 10월에 수립되어 1991년 12월에 붕괴된 74년간을 북한이 정부 수립을 공식 선포한 1948년 8월에 기계적으로 더한 것이나, 오늘날 변화의 속도와 폭이 빠르고 깊은 것을 고려하면 그 시기는 더 빨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15)
김정일이 자신의 건강 때문에 3대 세습의 공식화를 조기 단행하고 권력재편을 하였으나, 김정은이 어리고 경험이 없어서 북한 체제의 미래 전망이 불투명하며 특히 김정일이 상당 기간 생존하여 후견체제 안정화에 진력하지 않는 한 권력 투쟁으로 북한 체제가 불안정하게 될 것이라는 견해(16)와 불안정하나 내구력이 있을 것이라는 등으로 견해(17)가 분분하다.
북한은 변변한 산업시설이 없고 2008년과 2009년의 1인당 국민소득이 각기 1,065달러, 960달러(한국의 1/18)밖에 되지 못하고 2008년과 2009년 외국과의 수출입 총액이 각기 38억 달러, 34억 달러(한국의 0.4-0.5%)이어서 주민을 굶겨 죽이는 상황이다.
화폐개혁 실패 등으로 인한 심각한 경제 문제, 북한 주민들의 체제 이탈 현상 증가, 김정일의 건강 악화, 핵심 실세들의 병사와 질환,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도발적 행위에 대한 국제제재 등 북한의 종말 징후(18)가 나타나고 있는데도 북한이 수령유일지배체제를 고집하면서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 핵무기,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를 계속 개발할 경우 3대 세습 실패와 경제추락으로 점차 붕괴되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에 입각한 한국 주도의 통일을 맞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근거는 그 근거는 네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첫째, 글로벌한 차원에서 사실상 공산주의는 사라지고 한국이 선택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가 세계적 트렌드이다. 외관상 공산주의를 표명하고 있는 4개국(중국, 베트남, 쿠바, 북한)도 순수한 의미의 공산국가가 아니며, 이들 나라의 미래도 시간적 차이는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1990년을 전후하여 러시아와 동구 공산국가들이 경험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로의 체제전환을 할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즈비그뉴 브레젠스키(Brzezinski)와 프란시스코 후쿠야마(Fukuyama)가 이미 밝힌 것처럼 공산주의 이념은 논리의 지나친 단순화, 경제 실패 초래는 물론 이념으로서의 역할과 대중을 움직이는 동기부여 능력을 상실했고(19) 정치적인 내부 결속력을 유지할 만한 진지한 이념으로서 그 기능을 잃었기 때문이다. (20)
둘째, 북한 체제 자체의 문제점으로 붕괴가 임박하다. 김경희•장성택 등의 후견인을 내세운 3대 세습, 개혁적 성향 군부의 반 김정일 쿠데타, 군부 내 친 김 부자 세력과 개혁 세력 간의 대결 또는 경제난에 따른 북한 주민의 시위 확대로 인한 내전상태가 단계적으로 또는 단기간에 압축적으로 전개될 것이다.(21)
2009년 11월 30일 신구 화폐를 100:1로 액면절하하고 화폐교환을 하는 두 가지 조치를 하면서 시장까지 폐쇄하여 단행한 화폐개혁의 실패(22)와 김정일의 생존이 길어야 3~5년(23)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그의 사후 권력 투쟁으로 체제 붕괴 속도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경륜과 공적이 없는 27세 후계자의 등장으로 선군정치와 수령 신격화의 동요가 예상되고 신분상승을 위해 노력해온 일반당원들과 군부의 세대교체로 권력핵심에서 제외된 오극렬(24), 김영춘, 장성택의 반발도 지켜 볼 일이다.
셋째, 남북한 간의 국력 격차가 심화되고 외부 정보의 유입으로 북한 사회의 개방이 불가피하다. 1인당 국민총소득이 북한보다 열세(1960년 북한 137달러, 한국 94달러)였던 한국이 1972년 처음으로 북한의 316달러보다 조금 높은 322달러가 된 후 2008년에는 한국 19,231달러, 북한 1,065 달러, 2009년에는 한국 17, 175달러, 북한 960달러로 약 18배나 앞지르게 되었으며(25) 자연히 한국의 국민총소득이 북한에 비해 38배를 넘고 앞으로 그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26)
또한 IT•통신기술의 발달과 외부 교류 확대에 의한 외부 정보의 유입으로 북한 사회 동요 가능성이 점점 높아질 것이다. 북한은 이집트 통신사 ‘오라스콤 텔레콤’과 합작으로 ‘고려링크’를 설립해 이동통신 서비스를 제공 중이며, 지난 6월말 현재 휴대전화가입자는 약 18만 5000명이다.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3대 세습이 공식화되자 9월 말 현재 휴대전화가입자가 약 8억 명에 달하고 인터넷이 발달한 중국에서는 당국이 과렴선치(寡廉鲜恥)'라는 중국의 사자성어에 빗대어 “고대 봉건시대 황태자 세습 제도를 한 북한은 파렴치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국가”라고 하는 네티즌들의 비을 막고 있음에도 중국과의 활발한 인적 교류로 이러한 비판이 북한 사회에 유입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째, 핵,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대남 군사도발을 계속할 경우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종국적으로는 2009년 5월 25일 제2차 핵 실험과 단거리 미사일 발사로 유엔 안보리가 2009년 6월 12일 채택한 화물검색, 무기금수, 금융제재 요지의 1874호 결의(27)보다 강한 물리적 제재를 포함한 대북 대책의 전면적 검토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유엔안보리 1874호 결의는 2006년 10월 9일 제1차 핵 실험에 대해 10월 14일 만장일치로 채택한 1718호 결의(28)보다 강력한데다 회원국들의 호응이 적극적(29)이고,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 행정부가 북한 선박 추적, 북한기업 제재, 북한과 거래하는 외국 기업 제재를 통해 이행을 구체화함과 동시에 중국과의 공조를 위해 적극 설득을 하고 있다.(30)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계속 개발에 대한 압력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2010년 8월 30일 북한의 사치품 조달행위, 돈세탁을 비롯해 현금 밀수, 마약 거래, 화폐위조 등 불법적이고 기만적인 행위를 차단하는 대북제재 행정명령 13551호를 발효시키면서 46명의 사망자를 낸 천안함 폭침을 주도한 김영철 인민무력부 정찰총국장과 세 기관, 즉 노동당 39호실, 천안함 공격어뢰인 CHT-02D를 수출한 북한 무기수출 업체 청송연합, 정찰총국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였다.
같은 날 미 재무부는 이와는 별도로 2005년 6월 29일 부시(George W. Bush)대통령이 대량살상무기 확산국가 및 조력자들에 대해 재산동결 등의 조치를 취한 행정명령 13382호에 의거하여 북한 기관 5곳(제2경제위원회, 군수공업부, 제2 자연과학원, 대성무역, 흥진무역)과 개인 3명(윤호진 남천강 무역회사 대표, 리제선 원자력 총국장, 리홍섭 원자력총국 고문)을 추가 제재대상으로 지정했다. (31)
또 11월 18일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실은 김정일의 자금을 관리하는 '노동당 39호실'이 소유하거나 통제하고 있는 ‘조선대성은행’과 ‘조선대성무역총회사’를 제재대상으로 추가 지정했다. (32)
북한이 제2차 핵실험을 하고 서해에서 군사도발을 하는 것에 대하여 중국이 북한을 대하는 태도도 예전 같지 않다. 중국은 단동(丹東)을 통해 밀반입하려던 미사일 부품 제조 원료인 바나듐을 압수하고 또 중국 철강회사 ‘중광(中鑛)국제투자’는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리스트에 오른 북한기업 조선광업개발무역회사와 북한 내 동(銅)광산 개발에 나섰다가 중단하였다. (33)
11월 23일 있은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에 대하여는 보다 직접적이다. 11월 26일 중국 양제츠(楊潔篪) 외교부장은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를 불러 연평도 포격사건에 대한 중국 측의 우려를 전달하고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북한에는 미래가 없다......비록 북한이 지금 상황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매번 도발을 반복할 때마다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북한을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34)
이상과 같은 여러 근거들은 결국 억압과 빈곤으로 체제 유지가 한계에 이르렀음에도 역사의 진행에서 볼 때 퇴행적 체제를 유지하면서 대남군사도발을 계속을 하는 북한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선진화로 나아가는 한국에 결코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것으로 종합된다. (계속)
주)
6) Andrei Amalrik, Will the Soviet Union Survive Until 1984? ((New York: Harper & Row. Publishers, 1970).
7) 소련체제 붕괴 예언과 분석에 대한 대표적 저서로는 Zbigniew Brzezinski, The Grand Failure: The Birth and Death of Communism in the Twentieth Century (Macmillan Publishing Company, Incorporated, 1990); Francis Fukuyama, 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 (New York: The Free Press, 1992); 안영섭, 세계정치경제학: 글로벌 질서변화와 사회과학 통합분석(서울: 법문사, 2000)을 참조.
8) 이 보고서는 랜드연구소의 1999년 8월 「한반도 통일을 위한 대비: 예측되는 시나리오와 그 의미(Preparing for Korean Unification: Scenario & Implication」의 후속판이다.
9) National Intelligence Council, Global Trends: A Transformed World (Washington DC: US Government Printing Office, 2008), p. 62.
10) 박영숙ㆍ제롬 코헨ㆍ테드 고든, 『미리 가본 2018년 유엔미래보고서』(서울: 교보문고, 2008), pp.46-50.
11) 김진현, “한국의 연성국력으로 인류 상생의 ‘서울 컨센서스’ 빚어내자,”『월간조선』• 삼성경제연구소 공동기획, 『2030년의 대한민국』, 『월간 조선』 2009년 1월호 별책부록, p. 18.
12) 조지 프리드만 저, 손민중 역, 『100년 후』(서울: 김영사, 2010), p. 215. 그는『조선일보』기자와의 인터뷰에서는 한국이 선택의 여지없이 북한을 흡수하여 통일하게 되는 동북아 국제관계를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 2010. 2. 4. p. A14.
13) 『조선일보』, 2010. 1. 1, p. A10.
14) 정은미, “‘이중적’ 통일인식과 대북인식의 ‘북한효과’,”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 학술심포지움「2010 통일의식조사 발표 통일의식•통일론•통일세」(2010. 9. 7), p. 9; 이각범, “통일과 선진화 국민의식조사 발표,” 한반도선진화재단 창립 4주년 기념 심포지움「대한민국 어디까지 왔나」(2010. 9. 16), p.13.
15) 송종환, “2022년 이전 북한 붕괴로 한반도 통일될 것,”『미래한국 위클리』, 338호(2009. 3. 7-14), p. 8.
16) 최진욱(2010. 10. 4), ; 김진하, “북한 권력세습의 안정성 전망,” 통일연구원, KINU 현안분석(2010. 10.27), p. 2.
17) 조민, “동북아 정세변화와 남북관계-미•중 갈등과 한반도-,” 「2010 제2차 민화협 정책토론회 한반도 주변정세의 변화와 남북관계」(2010. 11. 2).
18) 북한체제의 종말 징후에 대하여는 유석렬,『이것이 북한 종말 징후인가』(서울: 예영커뮤니케이션, 2010)와 김석우•홍성국,『통일은 빠를수록 좋다』(서울: 기파랑, 2010)을 참조.
19) Zbigniew Brzezinski, The Grand Failure: The Birth and Death of Communism in the Twentieth Century (Macmillan Publishing Company, Incorporated, 1990), pp. 1-12.
20) Francis Fukuyama, 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 (New York: The Free Press, 1992). pp. 29,35
21) 박관용, 『통일은 산사태처럼』(서울: 경덕출판사, 2006), pp. 157-162. 한국국방연구원 김태우 박사는 예상되는 시나리오로 집단지도체제, 세 아들 중 하나가 권력승계, 장성택 등 여타 특정인 권력승계, 쿠데타에 의한 권력탈취, 민중봉기, 중국의 군사개입으로 북한 점령, 친중 사회주의 정권, 비핵사회주의 정권, 비핵실용정권,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 등 10가지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사단법인 시대정신,「북한의 붕괴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사)시대정신 북한위원회 1차 세미나(2008. 10. 14) 자료집 pp. 25-31. 미국 외교관계협의회(CFR)도 2009년 1월 28일 발표한 '북한 급변(急變) 사태에 대한 대비(Preparing for Sudden Change in North Korea)'라는 제목의 52쪽 분량의 보고서에서 김 위원장의 건강이 악화될 경우의 시나리오로 ▲김 위원장의 아들이나 그의 매제인 장성택 등이 집권하는 형태의 '잘 관리된 계승' ▲김 위원장과 연관이 없는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는 '투쟁적 계승' ▲북한을 완전한 붕괴로 이르게 하는 '실패한 계승' 3가지를 예상했다. 『조선일보』, 2009. 1. 29, p. A 2. 데일리 NK의 손광주 편집장은 김정일 이후 북한체제를 3대 세습, 후계자+장성택 체제, 집단지도체제, 후계구도 모호로 통치권 불안 등의 시나리오를 제시하였다. 손광주, “‘김정일 이후’ 북한체제 전망,”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세미나(2009. 4. 8).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는 김정일의 안정기, 불안정한 과도기(개혁의 시도, 자발적인 반란과 혼돈, 친중국 쿠데타), 재안정화 단계(친중국 정권 또는 흡수통일)의 3단계를 제시하였다. 안드레이 란코프, “북핵 실험 후 남북관계 전망,” 2009 상반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학술회의 「제2차 북핵 실험과 한반도 안보정세 변화-미북관계와 남북관계, 그 양측에 서서」(2009. 6. 18), pp. 85-100. 북한 급변사태의 각종 유형에 대하여는 박관용 외. 『북한의 급변사태와 우리의 대응』(서울: 한울아카데미, 2007)을 참조. 남성욱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은 2009년 7월 13일 부산시 교육연구정보원에서 있은「북한의 군사적 모험주의와 3대세습?」 제하의 특강에서 김정운으로의 3대 세습이 예상되나, 김정일의 건강이상설에 비추어 앞으로 김정일의 갑작스런 사망, 인지능력과 행동능력이 중단된 상태로 수명만 유지하는 상태, 인지능력은 보유했으나 행동능력이 무력화한 상태, 인지능력과 행동능력이 정상이나 보행이 불편하여 외부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 등 다섯 가지 시나리오를 예상한다고 주장하였다. 북한체제가 불안정하나 내구력이 있다고 판단하는 조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포스트 김’정권은 ‘강성대국의 문을 여는 해’로 선포한 2012년 이후 2~3년 사이에 정권지속 여부의 전환점을 맞이할 가능성이 있으나 북한은 아래로부터의 저항과 시위에 의한 와해 내지 붕괴 사태가 예상되기 힘든 상태이므로 폴란드 야루젤스키와 같은 개혁적 군부 리더의 등장이나 미얀마 형 군부 독 재와 같은 폐쇄형 자급자족 체제와 같은 ‘위로부터의 변화’의 길이 열려 있다고 주장하였다. 조민(2010. 11. 2), pp. 69-71.
22) 통화증발, 물품공급 부족으로 인한 인플레로 물가 수준이 화폐개혁 2달 후 화폐개혁 이전 수준으로 물가가 복원되어 2010년 1월부터 식량위기 가중으로 아사자 발생 시작하고 1월 말 주민들이 보안원을 폭행하는 사례가 발생하여 1월 중순 박남기의 책임을 물어 총살하고(?) 1월 28일 김영일 내각총리가 평양시 인민반장 앞에서 실패를 인정, 사과한 후 2월 초부터 종합시장이 다시 열리고 2월 중순 이후 외환거래가 다시 허용되었다. 필자가 지난 8월 29일 단동에서 만난 선교사는 북한에는 유리 있는 집이 거의 없고 화폐개혁 후 살인적 인 플레로 금년도 신의주 지역에서 200 여명이 굶어죽고 화폐개혁 전 중국 화폐 100위안(한국 돈 약 17,000원)이 북한 돈 400원이었으나, 지금은 20,000원 정도이며 정부 하달 물가가 수시로 변하고 돈 있는 사람이 습격을 받을 정도로 평양의 치안 상태가 물란하다고 말하였다.
23) 김대중 전 대통령이 타계 2시간 전까지 혈액투석을 담당했던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최규헌 교수는 2008년 여름에 발병한 뇌졸중에 이어 당뇨성 만성신부전증으로 혈액투석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정일과 같은 환자의 5년 생존율이 54% 수준이라고 말하였다.『매경ECONOMY』, 2010. 3. 3, p. 34.
24) 오극렬은 1992년에 발생한 소련의 사관학교 프룬제 군사대학에 유학했던 젊은 인민군 장교들의 쿠데타가 성공할 경우 지도자로 추대키로 되어 있었으나 동 쿠데타 계획을 김정일에게 밀고한 후 군부 핵심으로 우대받아왔다.
25) 2007년에는 한국이 21,695 달러, 북한이 1,152 달러이었으나, 미국 발 금융위기로 인해 2008과 2009년에는 후퇴하였다. http://ecos.bok.or.kr(검색일: 2010. 11. 4). IMF는 2009년 한국의 국민 1인당소득이 16,354달러를 기록한 뒤 2010년 17,301달러, 2011년 18,771달러에 그칠 것이나, 2012년 20,448달러, 2013년 22,213달러, 2014년 23,994로 상승세를 지속할 것으로 전망하였다.『중앙일보』, 2009. 8. 22, p. 13.
26) 북한 정부 예산을 한국의 광역자치단체 예산과 비교한 상세는 이정훈, “북한 전체 예산, 전남 구례군 수준....이제 한국 군비경쟁 상대는 중국이다!”『신동아』, 2008년 1월호, pp. 216-232를 참조.
27) 주요 제재 내용은 공해상 의심 선박, 금지 품목 발견 시 압류•처분 등 화물 검색, 모든 무기 관련물자 수출통제, WMD•미사일에 기여할 수 있는 재원 동결을 포함한 금융거래 금지 및 대북 무역에 대한 공적 금융 지원 금지, 무상원조, 금융지원, 양허성 차관의 계약금지 및 기존계약 감축 등의 금융제재을 포함한다. 한희원 교수는 2009년 6월 12일 유엔안보리 결의 1874호는 유엔 회원국 192개국이 한 목소리로 북한이라는 나라를 rogue state로 규탄한 것으로서 중국 등이 동참하여 그 제재 내용이 이행만 되면 생존 자체가 어렵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2009. 6. 23. 인터뷰.
28) 비군사적 제재를 허용하는 유엔 헌장 제7장 41조를 적용한 주요 제재 내용은 핵무기•미사일 관련 물자 제품 교역 금지, 북한 자산 동결 및 금용 중단, 무기제조 관련자 여행금지, 북한 화물 검색 협력 및 이행 조치 보고, 제재위원회 설치를 포함하고 있다.
29) 2009년 8월 29일 로이터통신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정부가 북한산 무기를 싣고 이란으로 향하던 호주 국적의 화물선을 나포하였다고 보도하였는데, 이번 나포는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 1874호 채택 이후 북한의 무기수출이 적발된 첫 번째 사례이다. 6월 말에는 불법무기를 실은 것으로 의심되는 북한 선박 강남1호가 미얀마 방향으로 향하다 미 해군 구축함의 추적을 받아 북한으로 회항을 한 바 있고 8월 7일에는 인도가 자국 해상에 불법 정박한 북한 선박 ‘MV 무산호’를 추격 끝에 나포했지만, 불법무기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30) 『조선일보』, 2009. 7. 2, p. A3.
31) 『조선일보』, 2010. 9. 1, p. A1.
32) 『조선일보』, 2010. 11. 20, p. A6. ‘조선대성은행’은 노동당 39호실이 소유하고 있는 대외결제은행이며, ‘조선 대성무역총회사’는 39호실의 불법 거래에 이용된 위장회사다.
33) 『조선일보』, 2009. 7. 31, p. A5; 『중앙일보』, 2009. 7. 29, p. 8.
34)『조선일보』, 2010. 11. 27, p. A6.
2010년 3월 천안함 침몰, 11월 연평도 포격사건 등으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여러 강대국의 강경발언과 한국정부의 대북정책 등으로 인하여 625전쟁 이후 가장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북한 김정일위원장의 건강 악화설, 3대 세습과 핵개발 등으로 북한정권의 운명도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이 글은 한국선진화재단과 동아일보사 화정평화재단이 2010년 12월7일 신라호텔에서 공동주최한 <통일준비: 누가, 무엇을, 어떻게>란 제하의 세미나에서 송종환 명지대 북한학과 초빙교수가 제1부 '한반도 통일비전과 공동체추진전략'의 주제발표자로 발표한 것을 정리한 것입니다. 물론 이 분의 주장이 모두 옳거나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고, 학자의 의견으로 충분히 고민할 여지는 있어 소개한다.
한반도의 자유민주주의 통일비전과 과제(上)
차례
1. 남북대화 개시 이후 성찰을 통한 문제의 제기
2. 한반도의 자유민주주의 통일 예상 시기와 객관적 환경
3.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의 유익과 주도•동행할 주체
4.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위한 한국의 정책과 과제(I): 튼튼한 안보, 국내체제의 선진화와 이를 뒷받침할 외교 강화
5.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위한 한국의 정책과 과제(II): 북한체제 변화 유도 대북정책, 북한급변사태•탈북자 대책과 통일 후 과제
6. 맺는 말
1. 남북대화 개시 이후 성찰을 통한 문제의 제기
1971년 8월 20일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원회에서 남북이산가족찾기를 위하여 남북적십자사 파견원 접촉이 있은 이후 지금까지 공개 리에 개최된 회담이 총리 간 회담, 정상간 회담 등을 포함하여 총 605회(정치 분야 248회, 군사 분야 48회, 경제 분야 105회, 인도 분야 150회, 사회 문화 분야 54회) 개최되었다.
국민의 염원을 안고 전 세계가 주시하는 가운데 회담들이 개최되었으나, 남북한 관계 개선과 통일을 위하여 이렇다 할 의미 있는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오히려 서로 불신하고 특히 한국에서는 남북대화에 거는 기대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이렇게 남북한 관계가 의미 있는 진전을 보이지 않는 데에는 기본적으로 북한 측이 한국과의 상생 공영은커녕 공산화 통일을 버리지 않고 남북한 간에 협상의 개념이 상이(1)한데도 있지만, 통일을 이룩한 서독에 비하여 한국 측이 잘 못 한 부분도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남북한 간의 대화를 시작하였을 때에 비추어 북한이 한국에 비하여 정치, 경제적으로 또 국제적 위상도 상대가 되지 않는 상황이므로 지난날을 돌아보는 것이 앞으로 통일의 결의를 다지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첫째, 적극적인 통일정책이 없었고 대북정책의 최종 목표가 한국 헌법이 명시한 자유민주주의 통일 실현임을 분명히 하지 않고, 북한을 포용할 것인가, 압박할 것인가 하는 논쟁만 무성하여 국민들 사이에 혼란과 갈등과 분열만이 증폭되었다. 그 원인은 대북정책을 국내정치에 이용하고 대통령 개인의 이념과 소신으로 헌법 4조가 천명한 ‘자유민주주의적 평화통일’을 무시하였기 때문이다.(2)
둘째, 합의서 채택 시의 문제점이다. 한국은 합의 당시부터 남북한이 의도하는 바와 해석이 다르나 전략적 목표 달성을 위하여 애매모호한 용어로 된 문서에 합의를 하였다. 이러한 합의서 채택은 이행문제를 협의하는 단계에 이르러 남북한이 각기 달리하였던 의도와 해석이 구체화되어 좀처럼 의견 접근이 되지 않은 경우와 북한 측이 세 불리를 모면할 목적으로 일단 합의한 후 이를 아예 이행하려 하지 않는 경우를 초래하였다.
「7. 4 남북공동성명」과「6. 15 남북공동선언」이 전자의 경우라고 한다면 서독으로의 동독 흡수, 동구・소련 등 공산진영의 붕괴로 인한 급변하는 국제정세 하에서 외교적 고립과 안보위기 의식으로 절박하였던 북한 측이 체제보호를 위하여 대폭 양보를 하였던「남북기본합의서」는 후자를 대표하는 예라고 할 수 있다.(3)
셋째, 북한의 잘 못이나 합의 후 불이행에 대하여 사과나 벌을 강요하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0년 8월 15일 광복 25주년 경축사에서「8•15 평화통일구상 선언」을 발표하면서 북한이 “무력에 의한 적화통일이나 폭력혁명에 의한 대한민국의 전복기도를 완전히 포기할 것”을 전제로 남북한 간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북한의 태도변화가 없고 테러 자행, 핵무기 개발 등으로 더 강경해졌는데도 한국 정부는 북한에 벌칙을 가하지 않고 북한이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대화를 중단한 후 대화에 돌아오더라도 문제시하지 않았다.
북한이 남북한 간의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 한국이 북한의 이행을 강요하는 의지가 없을 경우 “조약은 준수되어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라는 국제법의 근본규범(Grundnorm) 자체를 부인하게 되었고 남북한 간에는 합의 후 불이행하는 것이 관행이 되고 말았다.
특히 좌파정부의 대화 기간 중에는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하더라도 따뜻하게 포용하면서 일방적으로 지원하고 교류•협력을 하면 중국처럼 개혁하고 변화할 것이라는 기조의 대북포용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안보기조가 흔들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남북대화를 목표도 분명하지 않고 이렇다 할 성과도 없이 남북한이 접촉과 대화를 하는 사이에 특히 1998년 2월부터 2008년 2월 집권한 좌파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을 거치면서 한국에서는 한국체제로의 통일을 소극적으로 보거나 회피, 부정 내지 반대하는 견해가 확산되는 지극히 우려되는 일들이 벌어졌다.
1990년 10월 3일 독일 통일 이후의 막대한 통일비용이 문제시됨에 편승하여 김대중 전 대통령은 흡수통일을 반대하면서 흡수통일=막대한 통일비용이라는 등식을 국민들의 뇌리에 각인시키고 통일보다 분단 유지 내지 관리가 더 좋다는 것을 확산시켰다.(4)
좌파들은 현재의 북한 수령유일지배체제가 존속할 수 없게 되는 흡수통일이 될 경우 남북한 간에 전쟁이 일어나거나 중국군이 북한 지역에 진입할 위험이 있음을 여론화하는데 성공하였다.
좌파들은 대북포용정책이 오늘날 북한 상황과 도발에 비추어 성과가 없었다고 지적하면 “그러면 북한과 전쟁하겠다는 뜻이냐”고 까지 반발하면서 미안함과 사과를 모르는 북한과 계속 대화해야 하고 고마움과 감사를 모르는 북한에 계속 지원해야 한다고 하면서 심지어 북한이 변화하지 않은 것은 한국과 미국 탓이라고 주장하는 의견도 우려할 정도로 많다.
좌파들 중에는 핵•미사일•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여 세계 평화와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북한의 수령유일지배체제를 지지하면서 종북하면서 한국을 위태롭게 하는 부류도 있다. 이들은 어떠한 체제로든 빨리 통일하는 것이 좋다는 통일지상론을 펴면서 마치 자유민주주의체제와 수령유일지배독재체제를 절충하는 제3의 길이 있는 듯이 호도하여 기적과 같이 발전한 대한민국을 거부하고 자유민주주의체제로의 통일을 부정하고 있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위에서 지적한 이러한 현상들은 북한이「6•15 남북공동선언」과「10•4 선언」합의로 북한의 대남전략과 통일정책인 자주(주한미군철수), 민주(국가보안법 철폐), 통일(북한식 연방제 통일)을 문서화한 후 이를 적극 추진하고자 하는데 대해 한국의 좌파정부가 대북 유화적 견지에서 이를 반대•차단하지 않거나 동조하였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2008년 2월 좌파정부 종식 후 새로운 패러다임 내지 남북한 관계 정립 주장이 강하게 대두되면서「한반도선진화재단」중심으로 목표•가치 지향의 ‘선진화통일방안’(5)이 제기되고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8월 15일 제65주년 경축사에서 통일세 준비 논의를 제안한 이래 학계에서는 통일의 편익이 비용보다 크다는 토론이 활발해지고 있다.
이러한 학계의 움직임을 선도하고 있는「한반도선진화재단」이 주최하는 세미나에 1970년대 초 남북대화에 참가한 제1세대 중 마지막 남은 활동가 중의 한 사람으로서 전체 국민의 통일 염원에 부응하고 이러한 새로운 움직임에 기여하기 위하여 오늘 주제 발표에 임한다.
주)
1) 남북한 간의 협상 개념 상이에 대한 상세는 송종환,『북한 협상행태의 이해』(서울: 오름, 2007), 개정증보판을 참조.
2) 박세일, “한반도의 선진화 통일론,” 선진통일연합 발기인대회 자료집「21세기 대한민국의 비전」(2010. 11. 23) pp. 21-28.
3) 송종환, “분쟁해결수단으로서의 남북협상: 실제와 교훈,”「한반도 평화회담의 과거와 현재」, 통일연구원•대한국제법학회 공동학술회의 발표논문집(2004. 6. 25), p. 40
4) 조영기 외, 「미래지향형 통일방안 연구-‘선진화통일방안’의 모색을 중심으로-」(서울: 한반도선진화재단, 2009), pp. 48-49.
5) 한반도 선진화재단」의 ‘선진화통일’의 목표와 가치는 한반도 위에 선진일류국가를 건설하여 동북아와 아시아 전체의 영구평화와 번영에 공헌하여 북한 동포의 고통을 해방하고 새로운 성공적 민족사를 건설하는데 있다. 박세일(2010. 11. 23), pp. 15-17.
2. 한반도의 자유민주주의 통일 예상 시기와 객관적 환경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지만, 역사의 진운은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유사한 사례가 있다. 소련의 반체제론자인 안드레이 아말릭(Amalrik, 1938~1980)은 소련이 세계 최강인 미국과 양극체제로 전성기를 누리던 1970년도에『소련은 1984년까지 존속할 것인가』제하 소책자(6)에서 소련은 체제 내 사회적, 인종적 적대의식과 중국과의 전쟁으로 1980년부터 1985년 사이에 붕괴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당시 미국 학계는 아말릭의 주장을 신뢰하지 않았고 별로 주목하지도 않았으나, 소련은 1991년 붕괴되어 독립국가연합체제로 재편되었으며, 그 중심인 러시아연방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체제를 전환하였으며(7), 소련을 추종하였던 공산주의 국가들은 오늘날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몇 개 나라에 불과하고 그들마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변혁을 꾀하고 있다.
공산주의를 표방해온 국가들이 겪은 경험에 비추어 북한의 수령유일지배체제의 장래는 3대 세습 전후로 루마니아 차우체스크(Ceauscescu) 식으로 붕괴, 중국ㆍ베트남 식으로 개혁ㆍ개방, 러시아식으로 체제를 전환하거나 어렵지만 지금의 체제를 고수해 나가는 네 가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2005년도 미국의 랜드연구소는 「북한의 역설: 한반도 통일의 상황, 비용 및 결과(North Korean Paradoxes: Circumstances, Costs and Consequences of Korean Unification」제하의 보고서에서 체제진화와 통합을 통한 통일, 붕괴와 흡수를 통한 통일, 분쟁을 통한 통일 등 3가지 통일 시나리오 중 두 번째 시나리오에 의한 통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였다. (8)
2008년 11월 미국의 국가정보위가 발표한『2025년의 변화된 세계』제하보고서는 2025년까지 한반도에는 단일국가는 아니지만 느슨한 남북한연합 형태의 통일국가가 있게 될 것으로 전망하였다.(9)
2008년 12월 박영숙ㆍ제롬 글렌ㆍ테드 고든이 지은『미리 가본 2018년 유엔미래보고서』에 의하면, 2015년이 되면 북한도 후기정보화시대에 접어들어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통한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게 된다. 이에 따라 개개인이 지금보다 똑똑해지고 더 많은 정보를 갖게 돼 더 이상 권력 세습이 불가능해지고 북한체제의 점진적 붕괴로 2020년이 되면 남북한이 통일될 확률이 거의 90%에 달한다고 예측하였다. (10)
2009년 1월『월간 조선』과 삼성경제연구소가 공동 기획하여 발간한 『2030년의 대한민국』에서 김진현은 한국이 선진국으로의 국격(國格)이 정착된 후 북한이 군사도발을 하면 확실히 보복하고 통일을 성취하겠다는 의지와 능력을 북한과 전 세계에 보일 경우 2030년 경 통일을 바라볼 수 있다고 전망하였다. (11)
조지 프리드먼은 2009년 발간한 그의 저서 『100년 후(Next 100 Years)』에서 한국은 (북한 붕괴로) 2030년이 되기 훨씬 이전에 통일이 될 것 같다고 전망하였으며(12) 2010년 1월 1일 하버드대의 니알 퍼거슨(Ferguson) 교수는 북한은 앞으로 10년 이상 존재하지 못할 것이며, 한반도의 재통일이 향후 10년간 가장 역사적인 사건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13)
2010년 하반기에 서울대 평화통일연구소와 한반도선진화재단이 실시한 통일문제 등에 대한 의식조사 발표에 의하면, 예상되는 통일시기가 지금부터 20년 내가 각기 45. 3%, 57. 9%, 20년 이상이 34.2%, 27.5%로 보다 더 걸릴 것으로 예상하였다. (14) 미국 국가정보 위원회 보고서를 제외한 여타 연구의 전망들은 북한 붕괴 후 한국 주도로 통일이 될 것임을 분명히 하고 통일 시기는 2020년~ 2030년 사이에 될 것으로 전망하는 것이 다수가 되고 있다.
이상의 전망을 구 소련의 붕괴와 연결시켜보면 북한은 지금부터 2022년 사이 그 어느 날 붕괴되어 한반도는 한국 주도의 통일 기회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예측은 소련이 1917년 10월에 수립되어 1991년 12월에 붕괴된 74년간을 북한이 정부 수립을 공식 선포한 1948년 8월에 기계적으로 더한 것이나, 오늘날 변화의 속도와 폭이 빠르고 깊은 것을 고려하면 그 시기는 더 빨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15)
김정일이 자신의 건강 때문에 3대 세습의 공식화를 조기 단행하고 권력재편을 하였으나, 김정은이 어리고 경험이 없어서 북한 체제의 미래 전망이 불투명하며 특히 김정일이 상당 기간 생존하여 후견체제 안정화에 진력하지 않는 한 권력 투쟁으로 북한 체제가 불안정하게 될 것이라는 견해(16)와 불안정하나 내구력이 있을 것이라는 등으로 견해(17)가 분분하다.
북한은 변변한 산업시설이 없고 2008년과 2009년의 1인당 국민소득이 각기 1,065달러, 960달러(한국의 1/18)밖에 되지 못하고 2008년과 2009년 외국과의 수출입 총액이 각기 38억 달러, 34억 달러(한국의 0.4-0.5%)이어서 주민을 굶겨 죽이는 상황이다.
화폐개혁 실패 등으로 인한 심각한 경제 문제, 북한 주민들의 체제 이탈 현상 증가, 김정일의 건강 악화, 핵심 실세들의 병사와 질환,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도발적 행위에 대한 국제제재 등 북한의 종말 징후(18)가 나타나고 있는데도 북한이 수령유일지배체제를 고집하면서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 핵무기,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를 계속 개발할 경우 3대 세습 실패와 경제추락으로 점차 붕괴되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에 입각한 한국 주도의 통일을 맞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근거는 그 근거는 네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첫째, 글로벌한 차원에서 사실상 공산주의는 사라지고 한국이 선택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가 세계적 트렌드이다. 외관상 공산주의를 표명하고 있는 4개국(중국, 베트남, 쿠바, 북한)도 순수한 의미의 공산국가가 아니며, 이들 나라의 미래도 시간적 차이는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1990년을 전후하여 러시아와 동구 공산국가들이 경험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로의 체제전환을 할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즈비그뉴 브레젠스키(Brzezinski)와 프란시스코 후쿠야마(Fukuyama)가 이미 밝힌 것처럼 공산주의 이념은 논리의 지나친 단순화, 경제 실패 초래는 물론 이념으로서의 역할과 대중을 움직이는 동기부여 능력을 상실했고(19) 정치적인 내부 결속력을 유지할 만한 진지한 이념으로서 그 기능을 잃었기 때문이다. (20)
둘째, 북한 체제 자체의 문제점으로 붕괴가 임박하다. 김경희•장성택 등의 후견인을 내세운 3대 세습, 개혁적 성향 군부의 반 김정일 쿠데타, 군부 내 친 김 부자 세력과 개혁 세력 간의 대결 또는 경제난에 따른 북한 주민의 시위 확대로 인한 내전상태가 단계적으로 또는 단기간에 압축적으로 전개될 것이다.(21)
2009년 11월 30일 신구 화폐를 100:1로 액면절하하고 화폐교환을 하는 두 가지 조치를 하면서 시장까지 폐쇄하여 단행한 화폐개혁의 실패(22)와 김정일의 생존이 길어야 3~5년(23)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그의 사후 권력 투쟁으로 체제 붕괴 속도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경륜과 공적이 없는 27세 후계자의 등장으로 선군정치와 수령 신격화의 동요가 예상되고 신분상승을 위해 노력해온 일반당원들과 군부의 세대교체로 권력핵심에서 제외된 오극렬(24), 김영춘, 장성택의 반발도 지켜 볼 일이다.
셋째, 남북한 간의 국력 격차가 심화되고 외부 정보의 유입으로 북한 사회의 개방이 불가피하다. 1인당 국민총소득이 북한보다 열세(1960년 북한 137달러, 한국 94달러)였던 한국이 1972년 처음으로 북한의 316달러보다 조금 높은 322달러가 된 후 2008년에는 한국 19,231달러, 북한 1,065 달러, 2009년에는 한국 17, 175달러, 북한 960달러로 약 18배나 앞지르게 되었으며(25) 자연히 한국의 국민총소득이 북한에 비해 38배를 넘고 앞으로 그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26)
또한 IT•통신기술의 발달과 외부 교류 확대에 의한 외부 정보의 유입으로 북한 사회 동요 가능성이 점점 높아질 것이다. 북한은 이집트 통신사 ‘오라스콤 텔레콤’과 합작으로 ‘고려링크’를 설립해 이동통신 서비스를 제공 중이며, 지난 6월말 현재 휴대전화가입자는 약 18만 5000명이다.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3대 세습이 공식화되자 9월 말 현재 휴대전화가입자가 약 8억 명에 달하고 인터넷이 발달한 중국에서는 당국이 과렴선치(寡廉鲜恥)'라는 중국의 사자성어에 빗대어 “고대 봉건시대 황태자 세습 제도를 한 북한은 파렴치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국가”라고 하는 네티즌들의 비을 막고 있음에도 중국과의 활발한 인적 교류로 이러한 비판이 북한 사회에 유입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째, 핵,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대남 군사도발을 계속할 경우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종국적으로는 2009년 5월 25일 제2차 핵 실험과 단거리 미사일 발사로 유엔 안보리가 2009년 6월 12일 채택한 화물검색, 무기금수, 금융제재 요지의 1874호 결의(27)보다 강한 물리적 제재를 포함한 대북 대책의 전면적 검토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유엔안보리 1874호 결의는 2006년 10월 9일 제1차 핵 실험에 대해 10월 14일 만장일치로 채택한 1718호 결의(28)보다 강력한데다 회원국들의 호응이 적극적(29)이고,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 행정부가 북한 선박 추적, 북한기업 제재, 북한과 거래하는 외국 기업 제재를 통해 이행을 구체화함과 동시에 중국과의 공조를 위해 적극 설득을 하고 있다.(30)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계속 개발에 대한 압력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2010년 8월 30일 북한의 사치품 조달행위, 돈세탁을 비롯해 현금 밀수, 마약 거래, 화폐위조 등 불법적이고 기만적인 행위를 차단하는 대북제재 행정명령 13551호를 발효시키면서 46명의 사망자를 낸 천안함 폭침을 주도한 김영철 인민무력부 정찰총국장과 세 기관, 즉 노동당 39호실, 천안함 공격어뢰인 CHT-02D를 수출한 북한 무기수출 업체 청송연합, 정찰총국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였다.
같은 날 미 재무부는 이와는 별도로 2005년 6월 29일 부시(George W. Bush)대통령이 대량살상무기 확산국가 및 조력자들에 대해 재산동결 등의 조치를 취한 행정명령 13382호에 의거하여 북한 기관 5곳(제2경제위원회, 군수공업부, 제2 자연과학원, 대성무역, 흥진무역)과 개인 3명(윤호진 남천강 무역회사 대표, 리제선 원자력 총국장, 리홍섭 원자력총국 고문)을 추가 제재대상으로 지정했다. (31)
또 11월 18일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실은 김정일의 자금을 관리하는 '노동당 39호실'이 소유하거나 통제하고 있는 ‘조선대성은행’과 ‘조선대성무역총회사’를 제재대상으로 추가 지정했다. (32)
북한이 제2차 핵실험을 하고 서해에서 군사도발을 하는 것에 대하여 중국이 북한을 대하는 태도도 예전 같지 않다. 중국은 단동(丹東)을 통해 밀반입하려던 미사일 부품 제조 원료인 바나듐을 압수하고 또 중국 철강회사 ‘중광(中鑛)국제투자’는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리스트에 오른 북한기업 조선광업개발무역회사와 북한 내 동(銅)광산 개발에 나섰다가 중단하였다. (33)
11월 23일 있은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에 대하여는 보다 직접적이다. 11월 26일 중국 양제츠(楊潔篪) 외교부장은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를 불러 연평도 포격사건에 대한 중국 측의 우려를 전달하고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북한에는 미래가 없다......비록 북한이 지금 상황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매번 도발을 반복할 때마다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북한을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34)
이상과 같은 여러 근거들은 결국 억압과 빈곤으로 체제 유지가 한계에 이르렀음에도 역사의 진행에서 볼 때 퇴행적 체제를 유지하면서 대남군사도발을 계속을 하는 북한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선진화로 나아가는 한국에 결코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것으로 종합된다. (계속)
주)
6) Andrei Amalrik, Will the Soviet Union Survive Until 1984? ((New York: Harper & Row. Publishers, 1970).
7) 소련체제 붕괴 예언과 분석에 대한 대표적 저서로는 Zbigniew Brzezinski, The Grand Failure: The Birth and Death of Communism in the Twentieth Century (Macmillan Publishing Company, Incorporated, 1990); Francis Fukuyama, 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 (New York: The Free Press, 1992); 안영섭, 세계정치경제학: 글로벌 질서변화와 사회과학 통합분석(서울: 법문사, 2000)을 참조.
8) 이 보고서는 랜드연구소의 1999년 8월 「한반도 통일을 위한 대비: 예측되는 시나리오와 그 의미(Preparing for Korean Unification: Scenario & Implication」의 후속판이다.
9) National Intelligence Council, Global Trends: A Transformed World (Washington DC: US Government Printing Office, 2008), p. 62.
10) 박영숙ㆍ제롬 코헨ㆍ테드 고든, 『미리 가본 2018년 유엔미래보고서』(서울: 교보문고, 2008), pp.46-50.
11) 김진현, “한국의 연성국력으로 인류 상생의 ‘서울 컨센서스’ 빚어내자,”『월간조선』• 삼성경제연구소 공동기획, 『2030년의 대한민국』, 『월간 조선』 2009년 1월호 별책부록, p. 18.
12) 조지 프리드만 저, 손민중 역, 『100년 후』(서울: 김영사, 2010), p. 215. 그는『조선일보』기자와의 인터뷰에서는 한국이 선택의 여지없이 북한을 흡수하여 통일하게 되는 동북아 국제관계를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 2010. 2. 4. p. A14.
13) 『조선일보』, 2010. 1. 1, p. A10.
14) 정은미, “‘이중적’ 통일인식과 대북인식의 ‘북한효과’,”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 학술심포지움「2010 통일의식조사 발표 통일의식•통일론•통일세」(2010. 9. 7), p. 9; 이각범, “통일과 선진화 국민의식조사 발표,” 한반도선진화재단 창립 4주년 기념 심포지움「대한민국 어디까지 왔나」(2010. 9. 16), p.13.
15) 송종환, “2022년 이전 북한 붕괴로 한반도 통일될 것,”『미래한국 위클리』, 338호(2009. 3. 7-14), p. 8.
16) 최진욱(2010. 10. 4), ; 김진하, “북한 권력세습의 안정성 전망,” 통일연구원, KINU 현안분석(2010. 10.27), p. 2.
17) 조민, “동북아 정세변화와 남북관계-미•중 갈등과 한반도-,” 「2010 제2차 민화협 정책토론회 한반도 주변정세의 변화와 남북관계」(2010. 11. 2).
18) 북한체제의 종말 징후에 대하여는 유석렬,『이것이 북한 종말 징후인가』(서울: 예영커뮤니케이션, 2010)와 김석우•홍성국,『통일은 빠를수록 좋다』(서울: 기파랑, 2010)을 참조.
19) Zbigniew Brzezinski, The Grand Failure: The Birth and Death of Communism in the Twentieth Century (Macmillan Publishing Company, Incorporated, 1990), pp. 1-12.
20) Francis Fukuyama, 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 (New York: The Free Press, 1992). pp. 29,35
21) 박관용, 『통일은 산사태처럼』(서울: 경덕출판사, 2006), pp. 157-162. 한국국방연구원 김태우 박사는 예상되는 시나리오로 집단지도체제, 세 아들 중 하나가 권력승계, 장성택 등 여타 특정인 권력승계, 쿠데타에 의한 권력탈취, 민중봉기, 중국의 군사개입으로 북한 점령, 친중 사회주의 정권, 비핵사회주의 정권, 비핵실용정권,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 등 10가지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사단법인 시대정신,「북한의 붕괴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사)시대정신 북한위원회 1차 세미나(2008. 10. 14) 자료집 pp. 25-31. 미국 외교관계협의회(CFR)도 2009년 1월 28일 발표한 '북한 급변(急變) 사태에 대한 대비(Preparing for Sudden Change in North Korea)'라는 제목의 52쪽 분량의 보고서에서 김 위원장의 건강이 악화될 경우의 시나리오로 ▲김 위원장의 아들이나 그의 매제인 장성택 등이 집권하는 형태의 '잘 관리된 계승' ▲김 위원장과 연관이 없는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는 '투쟁적 계승' ▲북한을 완전한 붕괴로 이르게 하는 '실패한 계승' 3가지를 예상했다. 『조선일보』, 2009. 1. 29, p. A 2. 데일리 NK의 손광주 편집장은 김정일 이후 북한체제를 3대 세습, 후계자+장성택 체제, 집단지도체제, 후계구도 모호로 통치권 불안 등의 시나리오를 제시하였다. 손광주, “‘김정일 이후’ 북한체제 전망,”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세미나(2009. 4. 8).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는 김정일의 안정기, 불안정한 과도기(개혁의 시도, 자발적인 반란과 혼돈, 친중국 쿠데타), 재안정화 단계(친중국 정권 또는 흡수통일)의 3단계를 제시하였다. 안드레이 란코프, “북핵 실험 후 남북관계 전망,” 2009 상반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학술회의 「제2차 북핵 실험과 한반도 안보정세 변화-미북관계와 남북관계, 그 양측에 서서」(2009. 6. 18), pp. 85-100. 북한 급변사태의 각종 유형에 대하여는 박관용 외. 『북한의 급변사태와 우리의 대응』(서울: 한울아카데미, 2007)을 참조. 남성욱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은 2009년 7월 13일 부산시 교육연구정보원에서 있은「북한의 군사적 모험주의와 3대세습?」 제하의 특강에서 김정운으로의 3대 세습이 예상되나, 김정일의 건강이상설에 비추어 앞으로 김정일의 갑작스런 사망, 인지능력과 행동능력이 중단된 상태로 수명만 유지하는 상태, 인지능력은 보유했으나 행동능력이 무력화한 상태, 인지능력과 행동능력이 정상이나 보행이 불편하여 외부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 등 다섯 가지 시나리오를 예상한다고 주장하였다. 북한체제가 불안정하나 내구력이 있다고 판단하는 조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포스트 김’정권은 ‘강성대국의 문을 여는 해’로 선포한 2012년 이후 2~3년 사이에 정권지속 여부의 전환점을 맞이할 가능성이 있으나 북한은 아래로부터의 저항과 시위에 의한 와해 내지 붕괴 사태가 예상되기 힘든 상태이므로 폴란드 야루젤스키와 같은 개혁적 군부 리더의 등장이나 미얀마 형 군부 독 재와 같은 폐쇄형 자급자족 체제와 같은 ‘위로부터의 변화’의 길이 열려 있다고 주장하였다. 조민(2010. 11. 2), pp. 69-71.
22) 통화증발, 물품공급 부족으로 인한 인플레로 물가 수준이 화폐개혁 2달 후 화폐개혁 이전 수준으로 물가가 복원되어 2010년 1월부터 식량위기 가중으로 아사자 발생 시작하고 1월 말 주민들이 보안원을 폭행하는 사례가 발생하여 1월 중순 박남기의 책임을 물어 총살하고(?) 1월 28일 김영일 내각총리가 평양시 인민반장 앞에서 실패를 인정, 사과한 후 2월 초부터 종합시장이 다시 열리고 2월 중순 이후 외환거래가 다시 허용되었다. 필자가 지난 8월 29일 단동에서 만난 선교사는 북한에는 유리 있는 집이 거의 없고 화폐개혁 후 살인적 인 플레로 금년도 신의주 지역에서 200 여명이 굶어죽고 화폐개혁 전 중국 화폐 100위안(한국 돈 약 17,000원)이 북한 돈 400원이었으나, 지금은 20,000원 정도이며 정부 하달 물가가 수시로 변하고 돈 있는 사람이 습격을 받을 정도로 평양의 치안 상태가 물란하다고 말하였다.
23) 김대중 전 대통령이 타계 2시간 전까지 혈액투석을 담당했던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최규헌 교수는 2008년 여름에 발병한 뇌졸중에 이어 당뇨성 만성신부전증으로 혈액투석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정일과 같은 환자의 5년 생존율이 54% 수준이라고 말하였다.『매경ECONOMY』, 2010. 3. 3, p. 34.
24) 오극렬은 1992년에 발생한 소련의 사관학교 프룬제 군사대학에 유학했던 젊은 인민군 장교들의 쿠데타가 성공할 경우 지도자로 추대키로 되어 있었으나 동 쿠데타 계획을 김정일에게 밀고한 후 군부 핵심으로 우대받아왔다.
25) 2007년에는 한국이 21,695 달러, 북한이 1,152 달러이었으나, 미국 발 금융위기로 인해 2008과 2009년에는 후퇴하였다. http://ecos.bok.or.kr(검색일: 2010. 11. 4). IMF는 2009년 한국의 국민 1인당소득이 16,354달러를 기록한 뒤 2010년 17,301달러, 2011년 18,771달러에 그칠 것이나, 2012년 20,448달러, 2013년 22,213달러, 2014년 23,994로 상승세를 지속할 것으로 전망하였다.『중앙일보』, 2009. 8. 22, p. 13.
26) 북한 정부 예산을 한국의 광역자치단체 예산과 비교한 상세는 이정훈, “북한 전체 예산, 전남 구례군 수준....이제 한국 군비경쟁 상대는 중국이다!”『신동아』, 2008년 1월호, pp. 216-232를 참조.
27) 주요 제재 내용은 공해상 의심 선박, 금지 품목 발견 시 압류•처분 등 화물 검색, 모든 무기 관련물자 수출통제, WMD•미사일에 기여할 수 있는 재원 동결을 포함한 금융거래 금지 및 대북 무역에 대한 공적 금융 지원 금지, 무상원조, 금융지원, 양허성 차관의 계약금지 및 기존계약 감축 등의 금융제재을 포함한다. 한희원 교수는 2009년 6월 12일 유엔안보리 결의 1874호는 유엔 회원국 192개국이 한 목소리로 북한이라는 나라를 rogue state로 규탄한 것으로서 중국 등이 동참하여 그 제재 내용이 이행만 되면 생존 자체가 어렵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2009. 6. 23. 인터뷰.
28) 비군사적 제재를 허용하는 유엔 헌장 제7장 41조를 적용한 주요 제재 내용은 핵무기•미사일 관련 물자 제품 교역 금지, 북한 자산 동결 및 금용 중단, 무기제조 관련자 여행금지, 북한 화물 검색 협력 및 이행 조치 보고, 제재위원회 설치를 포함하고 있다.
29) 2009년 8월 29일 로이터통신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정부가 북한산 무기를 싣고 이란으로 향하던 호주 국적의 화물선을 나포하였다고 보도하였는데, 이번 나포는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 1874호 채택 이후 북한의 무기수출이 적발된 첫 번째 사례이다. 6월 말에는 불법무기를 실은 것으로 의심되는 북한 선박 강남1호가 미얀마 방향으로 향하다 미 해군 구축함의 추적을 받아 북한으로 회항을 한 바 있고 8월 7일에는 인도가 자국 해상에 불법 정박한 북한 선박 ‘MV 무산호’를 추격 끝에 나포했지만, 불법무기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30) 『조선일보』, 2009. 7. 2, p. A3.
31) 『조선일보』, 2010. 9. 1, p. A1.
32) 『조선일보』, 2010. 11. 20, p. A6. ‘조선대성은행’은 노동당 39호실이 소유하고 있는 대외결제은행이며, ‘조선 대성무역총회사’는 39호실의 불법 거래에 이용된 위장회사다.
33) 『조선일보』, 2009. 7. 31, p. A5; 『중앙일보』, 2009. 7. 29, p. 8.
34)『조선일보』, 2010. 11. 27, p. A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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